바람을 따라/ 신석정

 

 

그때 나는

바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가면

바다같이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떼 지어 흘러가고

구름 밖엔 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들을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길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지상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일을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별들은 역력히 알고 있었다.

 

별들과 이야길 주고받던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도 부끄러운 까닭이었다.

 

다시 바람은 나를 데불고

구름을 헤쳐 무지갤 건너서

새벽안개 자욱한

강 언덕을 찾아가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강 언덕을 걷노라면

민들레꽃들이 모여서

흐드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들레꽃들도

자랑할 수 없는 지상의 모든 일을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는데

나는 놀랬다.

 

바람을 따라

언덕길을 한참 걷다가

숲길로 빠져나가면

사슴 떼가 한가히 놀고 있었다.

 

이윽고

바람이 대숲으로 돌아간 뒤

홀로 언덕길을 헤매던 나는

끝내 흐느껴 울다가

소스라쳐 깨었다.

어디서 밀화부리*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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