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4IgXlzYWnPA

[대상] 약속 / 신석정
오는 날의 잉태와 탄생

미친개처럼 사뭇 주둥이를 땅에 쳐박고 불안한 안개가 자욱이 흘러가는 골짜구니에도 꽃들은 피어서 솔깃이 향내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저 백합꽃을 보아라.
저 석죽꽃을 보아라.
저 용담꽃을 보아라.

너는 네 모든 꿈과 생시가 자주 드나드는 그 조용한 네 창변에서 저 꽃들을 꼬옥 포옹하고 싶은 그러한 뜨거운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느냐?

아무리 쩌눌리고 아무리 가난한 마음이 시방 저 낡은 지구의 골짜구니를 휩쓸고 있건만, 초목은 아직도 무성히 자라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밤에는 합환목도 이파리를 서로 아무리고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라거나 눈도 없는 백화동이나 콩 넌줄 같은 것들이 손을 뻗쳐 바위 언저리나 나무 가장귀를 휘어잡고 칭칭 감고 올라가는 것을 너는 보았으리라.

시방도 전쟁이 남기고 간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푸른 생채기가 가시지 앟는 골짜구니에는 쩌눌리고 또 일어서는 것들의 가늠할 수 없는 교향악이 드높은데 우리들의 귀한 방문객 벌 나비를 위하여 고운 빛깔과 진한 향기와 극히 소량의 꿀을 준비하고 오늘도 꽃들은 그들의 성대한 웃음을 아끼지 않는다.

!저 벌들의 잉잉대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리고 가녀린 어린 나비들의 노래소리를 들어 보아라.

이들의 실내악 속에는 오는 날의 막아낼 수 없는 잉태 같은 것 또 !탄생 같은 것이 약속되었느니라.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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