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신석정
성근 대숲이 하늘보다 맑아
댓잎마다 젖어드는 햇볕이 분수처럼 사뭇 푸르고
아라사의 숲에서 인도에서
조선의 하늘에서 알라스카에서
찬란하게도 슬픈 노래를 배워낸 바람이 대숲에 돌아들어
돌아드는 바람에 슬픈 바람에 나는 젖어 온 몸이 젖어……
난蘭아
태양의 푸른 분수가 숨 막히게 쏟아지는
하늘 아래로만 하늘 아래로만
흰 나리꽃이 핀 숱하게 핀 굽어진 길이 놓여 있다
너도 어서 그 길로 돌아오라 흰나비처럼 곱게 돌아오라
엽맥葉脈이 드러나게 찬란한 이 대숲을 향하고……
하늘 아래 새로 비롯할 슬픈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또 먼 세월이 가져올 즐거운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꿀벌처럼 이 이야기들을 물어 나르고 또 물어내는
바람이 있고 태양의 분수가 있는 대숲
대숲이 좋지 않으냐
난아
푸른 대가 무성한 이 언덕에 앉아서
너는 노래를 불러도 좋고 새같이 지줄대도 좋다
지치도록 말이 없는 이 오랜 날을 지니고
벙어리처럼 목 놓아 울 수도 없는 너의 아버지 나는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내 심장을 삼으리라
'시낭송대회 지정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銀杏나무 선 정원도庭園圖/ 신석정 (1) | 2020.12.02 |
---|---|
운석隕石처럼/ 신석정 (1) | 2020.12.02 |
나랑 함께/ 신석정 (1) | 2020.12.02 |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1) | 2020.12.02 |
들길에 서서/ 신석정 (1) | 20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