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가가 있는 골목 / 문성해
산사춘 복분자 오가피주 백세주 매실주는 물론이거니와 막걸리 한 명을 마시다가도 그 병을 만든 것을 확인한 일 그때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에 오래된 술도가 골목을 더듬더듬 헤매지도 않고 흘러 들어가게 된다 산사나무 열매 나 복분자 오가피 냄새와 시큼 달콤할 막걸리 냄새가 흘러나오는 그 골목을 찾아들면
누런 냄새 위에 쓰러져 누은 술꾼이 있고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비틀거리는 개가 있고
삐끔 열린 솟을대문 안에는 조금쯤 요망한 자세로 누워 깔깔거리는 여자들이 있다
어느새 나는 노란 한되들이 술 주전자를 들고
한모금 두모금 마시며 가는 간 큰애가 되어 미나리꽝이나 앞산이나 저수지가 타박타박
내 눈 속을 아프지도 않게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며 하늘과 땅과 마을과 들판 중에서도 내가 참 크다 하고
돌아앉은 뒷산도 그때만큼은 내 편이 란 생각을 하며
이런 술도가가 있는 우리 마을을 내가 참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옆집 새댁이 내는 스란치마 소리처럼
조금쯤 은밀하고
조금쯤은 세상에서 붕 떠 나 있는
그 술도가 골목을 어린 나는 어미의 품처럼 파고들었으니
지금도 술을 받아놓고 술병을 들고 소재지를 확인하는 나는
술 한잔 마시지 않고도
어느새 그 많은 술도가를 다 편람한 듯 마음이 화끈해지고
그 골목에서 술꾼들이 오줌을 다 받아먹고 사는 맨드라미 모양
너도 나도 이해할 수 있는 수굿한 고개가 되곤 한다
김은정 낭송
이화령 쯤에서 /이기철
황혼의 집들은 조금씩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산아래 산이 눕고 길 아래 길이 누워
살아 있는 것들은 나무도 짐승도 조금씩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문경새재는 밤에도 키가 크고
서로 부대끼면서도 아파 하지 않는 상수리들만 푸름을 놓쳐버린 잎들을 벌려
남쪽 마을 향해 펄럭인다.
이우출 시조비 제막식에
뇌졸증으로 오지 못한 신동집의 시 한 구절은 우리의 시월을 쓸쓸하게 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수안보 길을 묻지 않고 병든 시인의 안부를 물었다
누가 나에게 신의 모습을 그리라 한다면
나는 산짐승들의 유순한 눈에 비친
저녁놀을 그리겠다.
저녁의 빛깔이 하늘을 데우는 온기로 떠돌 때
숲은 햇빛을 제 몸 속으로 흡수하고
새들을 몸 밖으로 뱉어낸다
사람보다 나무들이 먼저 겨울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름 모르는 마을의 집들이 짐승처럼 엎드려 있는 이화령쯤에서 아무도 제 슬픔의 빛깔을 채색하지 못할 때
주황색의 깃발을 들어 나는
지상의 추위 타는 것들을 데워주고 싶다.
김인영 낭송
문경새재, 오리 무중을 해치다/ 배한봉
김인회 낭송
나는 문경새재에 저녁으로 눕는다/ 황종권
남궁경희 낭송
새재/ 이경림
칠흑의 새재를 넘어 보고야 알았다
한 재가 얼마나 많은 골짜기를 뿜고 있는지 골짜기들은 또 얼마나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지 새들도 넘지 못한다는 재를 칭칭 감으며 낡은 승용차가 위태롭게 내려갈 때
골골의 오줌이 노랗게 언 달을 밀어 올리고
한 치 앞의 벼랑이 시간을 자꾸 헛바퀴 돌릴 때 우리는 생사의 경계 위에선 아버지를 보았다
온 산에 슬픔이 달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누구였는지 문득, 넋 없는 사람처럼
재 아래 어른거리는 어린 날을 끄집어냈다
바람나 재 넘어간 옥자 얘기, 구랑리에서 떼죽음 당한 어느 一家의 얘기며
육이오 때, 목숨 걸고 재를 넘겨준 家僕의 얘기며 난리통에 관문 속 어느 골짜기에 묻히신 증조부 얘기를 두서없이 중얼댔지만
두려움보다 재는 높고 슬픔보다 길이 더 휘어
끝내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누군들 몰랐으리
그 모두 한 재가 토해낸 한숨 일하는 걸
그 숨으로 깊어진 골짜기라는 걸
그것이 밀어올린 봉우리라는 걸
박원숙 낭송
술도가가 있는 골목 / 문성해
신종철 낭송
마법의 숲 / 황범순
김관희 낭송
나는 문경새재에 저녁으로 눕는다/ 황종권
이것은 곰의 갈비뼈 속으로 난 길이다
저 억새풀이 곰의 털이라는 것은 바람만이 안다 뻣뻣하지만 구불거리는 나무는 금의 이빨
돌뿌리에 넘어진 무릎만이 비로소 신발 끈을 매고 첩첩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꽃들이 곰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자국을 밀어 올리는 것은 길이 아니라
곰의 숨소리, 으스스 별자리가 돋는 것도
제 등허리를 바위에 긁은 까닭이다
발목이 늘 벼랑인 사람들이 있다
떨어지지도 주저앉지도 못하는 힘으로
아비가 될 사람들은 발목에 불씨를 지폈으리라 아니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힘으로
신열 들키지 않게 제 짐을 산맥의 맡겨으리라
문경새재, 산적도 피해 가는 길
비처럼 붉은 달, 곰의 내장을 밝혀준다
울 수 없어 노래하고 노래할 수 없어
발목으로 저녁을 불러들였을 나의 아비들
젖은 눈썹을 지는 사람은 저기 고원이 고향이다
바람마저 곰의 뼈를 빌려 노래하는 문경새재 흙바닥에 나의 이마가 찍혔다
달밤은 춥고 나는 닳도록 걸어야 할 길이므로
목 길고 허리 가는 억새꽃밭의 저녁으로 눕는다
우진숙 낭송
물박달나무의 노래 /이가림
이대희 낭송
문경새재 /최재영
억새풀 억새풀 우거진 고갯길에 달빛이 휘황하다 조령과 주흘을 곁에 둘러앉히고
굽이굽이 넘어 온 길을 둘러보는데,
달빛을 가득 품고서야
비로소 환해지는 옛길이다
새들은 벌써 다 건너 갔을까
오래된 그리움들이 폭설처럼 쏟아지고
막사발은 천년의 비경을 품고 고요하다
수백리 물기를 여는 초점(草岾)에 이르러
새재를 넘던 옛 사람을 생각한다
물굽이 시퍼렇게 일으켜 세워도
못다 이룬 꿈이었을까
아슬아슬 벼랑길을 비껴가는 바람은
계곡마다 눈물꽃을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을 한사발을 들이켰으리
먼 후일 가슴 뜨거워진 내가 찾아와
다시 맨발로 천년을 거슬러 오르리니,
달빛이 슬어놓은 푸른 전설이
아직도 구슬픈 아리랑곡조로 흘러가는
아, 문경새재
초점(草岾):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 (태백 황지, 영주 순흥, 문경 초점)
이숙희 낭송
가을바람 / 강상율
문경 새재 넘는 사람아!
가을 들녘에 꿈을 감추고
경건히 기도하는 밀레의 만종을 보라
고난과 역경의 비바람 이겨낸 계절을
말없이 꿋꿋이 견딘 오늘
땀을 식히는 새재 바람 앞에서
저 벼 이삭처럼 조용히 머리 숙여 보라
빈 가슴에 와 닿는
대지의숨결 머문 부끄러움들
서로 잘난체뻐기며
눈을 부라리고 일이나
굳어진 얼굴로
부질없이 마음 상하던 일
모두 가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일이다.
문경새재 넘는 사람아!
산바람 넘쳐나는 기운을 보라
런닝의 깃발 휘날리는 저 벌판
황금 물결 넘실거리는 번영과 희망이
영순 들에도 새재골 주흘산 자락에도
빈궁한 우리들 가슴속에도
풍성한 결실이 고은 햇살을 타고
가을바람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리라
이원기 낭송
이화령 쯤에서/ 이기철 (367자)
황혼의 집들은 조금씩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산 아래 산이 눕고 길 아래 길이 누워
살아 있는 것들은 나무도 짐승도 조금씩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문경새재는 밤에도 키가 크고
서로 부대끼면서도 아파하지 않는 상수리들만 푸름을 놓쳐버린 잎들을 벌려
남쪽 마을 향해 펄럭인다.
이우출 시조비 제막식에
뇌졸증으로 오지 못한 신동집의 시 한 구절은 우리의 시월을 쓸쓸하게 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수안보 길을 묻지 않고 병든 시인의 안부를 물었다
누가 나에게 신의 모습을 그리라 한다면
나는 산짐승들의 유순아 눈에 비친
저녁놀을 그리겠다.
저녁의 빛깔이 하늘을 데우는 온기로 떠돌 때
슬픈 햇빛을 제 몸 속으로 흡수하고
새들을 몸 밖으로 뱉어낸다
사람보다 나무들이 먼저 겨울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름 모르는 마을의 집들이 짐승처럼 엎드려 있는 이화령쯤에서 아무도 제 슬픔의 빛깔을 채색하지 못할 때
주황색의 깃발을 들어 나는
지상의 추위 타는 것들을 태워주고 싶다.
정선애 낭송
문경새재 / 송택경
정우화 낭송
세제의 달빛 / 엄재국
최승희 낭송
'시낭송대회 지정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제1회 초려선생 추모「전국시낭송대회」 지정시 (1) | 2021.08.20 |
---|---|
갈보리의 노래1ㆍ2ㆍ3 / 박두진 (1) | 2021.05.31 |
(2021년)제5회 한글문학 수상 시 (1) | 2021.04.25 |
(2021년)제4회 문경새재전국시낭송대회 지정시 (1) | 2021.03.29 |
벙어리의 연가 / 문병란 (1) | 2021.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