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臺(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상심(傷心)[명사]
슬픔이나 걱정 따위로 속을 썩임.

· 아드님은 무사할 테니 너무 상심 마십시오.
· 장자를 잃은 한과 남편을 기다리는 데 지친 상심 탓인지 지어미는 속병으로 이미 타계한 뒤였다.<<김원일, 불의 제전>>


애증[명사]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애증이 깊어 가다.
· 애증이 엇갈리다.
· 나는 작가 이모 씨에게 대해선 일종의 애정과 더불어 이에 못지않은 미움을 가지고 있었다. 애증이 고루 섞인 복합된 감정이란 것은 때때로 묘한 작용을 한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통속[명사]
[ 1 ]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 이런 때 이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위안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한 대단치 않은 통속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허준, 탁류>>

한탄[명사]
원통(분하고 억울함.)하거나 뉘우치는 일이 있을 때 한숨을 쉬며 탄식함. 또는 그 한숨.

· 한탄을 금치 못하다.
·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한탄이 앞선다.
· 그의 입에서는 이제 어찌 살아갈꼬 하는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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