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 햇볕을 보내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노래/ 신석정

 

 

이슥한 안개 속을 헤쳐온

네 얼룩진 얼굴에 슬픈 종소리가

마지막 메아리로 잦아든 오늘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검은 밤이 올지라도

아폴로가 있어서 우리는 안심한다.

 

<어제는 모조리 원수에게 주어라 !>

 

<오늘만은 아예 양보할 수 없다 !>

 

<내일은 더구나 뺏앗길 수 없다 !>

 

멍든 역사가 질주하는 언저리에

주름 잡힌 얼굴

핏발 선 눈을 가진 얼굴

사자같이 노한 사월이 주고 간 얼굴

얼굴과

얼굴과

얼굴들 속에서

내일을 약속한 얼굴을 찾아라.

 

<없걸랑 그저 무참히 활을 겨누어도 좋다 !>

 

한 시인이 있어

<딱터 리>의 초상화肖像畵로 밑씻개를 하라 외쳤다 하여

그렇게 자랑일 순 없다.

어찌 그 치사한 휴지가 우리들의 성한

육체에까지 범하는 것을 참고 견디겠는냐 !

 

그러기에

최후에 벅찬 호흡으로 다스릴

욕되지 않을 악수는

아마 지구가 몇 바퀴 돌아간 뒤라야

우리 광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엄숙한 역사의 선고宣告도 동결된 지구地球에서

그렇게도 우리가 목마르게 대망하는 것은

결국

헤아릴 수 없는 쥐구멍에

헷볕을 보내는 민주주의의 작업을 떠나선 의미가 없다.

 

다시 쥐구멍에서

여윈 손이 나오고

노오란 얼굴들이 나온다면

차라리 그때엔

그 어두운 지구地區

까마귀로 하여금 목 놓아 울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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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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