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석고상石膏像/ 신석정
젊은 니힐리스트 홍洪에게서 들은 꿈 이야기
사뭇 푸른 하늘 아래
멀리 트인 푸른 벌판을
나는 누구를 찾아 이리 헤매이는 것일까?
끝없이 헤매이다 다다른
소나무 대 수풀 다옥한
작은 언덕 아래 작은 마을은
혈맥이 정지한 듯 고요한 마을이었다
아무리 목 놓아 불러보아도
마을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고
멀리 흐르는 강물소리
멀리 흐르는 푸른 강물소리……
그 언제 한물이 지내갔는가?
죽은 듯 고요한 이 마을은
엄청난 전란을 겪었는가?
죽은 듯 고요한 이 마을은
문득 어느 집 층층계를 무심코 오르다가
흰 장미처럼 발가벗은 여인이
햇볕이 드시게 흐르는 창 옆에
가로누워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당황하였다
꼬옥 다문 입술이랑 감은 눈이랑
아무 말이 없다.
고요하다
어디서 비롯하여 어디로 끝나는
눈 덮인 산맥보다 희고 고운 곡선이여……
가슴을 파헤치고 머리를 묻어도
볼에 볼을 문질러도 말이 없다
끝끝내 껴안은 채 흐느껴 흐느껴 목메이게 울다가
차디찬 석고상에 소스라쳐 나는 꿈을 깨었다
시방 나는 안개 자욱한 거리를 헤매이며
다시 붙잡고 목 놓아 울어볼 사람을 찾노라
모두 움직이는 석고상인 것을……
모두 다 움직이는 석고상뿐인 것을 ……
오오
멀리 흐르는 강물소리……
역력히 들려오는 그 강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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