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5.01.16 고요한 밤 거룩한 밤/김승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김승희


  칼바람 몰아치는 추운 겨울밤
  할머니 혼자 사는 어둠에 묻힌 집
  뒷마당 부엌문 쪽에서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나서
  관절에 고드름이 서걱이는 다리를 끌고
  할머니는 부엌문을 열어 보았다

  하얀 개가 방금 태어난 새끼를 입에 물고 할머니한테
  새끼 낳은 소식을 전하려 했다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쏟아지며
  새끼를 두 손으로 받아 안았다

  품 안에 새끼를 안고
  할머니는 앞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비닐 휘장이 젖혀진 개집 속에
  다른 새끼 네 마리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누워 누워 있었다

  고생했구나, 혼자 애를 낳았구나
  할머니는 어미 개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맛있게 미역국을 끓여 호호 불며
  두 손으로 어미 개 앞에 놓아 주었다
  새끼들이 조롱조롱 어미의 젓을 물고 있었다


ㅡ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창비, 2021.

293

'포송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가에 앉아서 / 정채봉  (1) 2024.09.01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 김혜린  (0) 2024.09.01
나는 가끔씩 광대처럼 살고 싶다  (0) 2024.08.17
도둑심보 / 이정록  (0) 2024.07.03
정방사에서 / 김도솔  (0) 2024.06.28
Posted by 시요정_니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