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앉아서 / 정채봉

나 오늘 물가에 앉아서
눈 뜨고서도 눈 감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반추한다
나뭇잎 사운대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고
꽃잎 지는 아득한 슬픔 또한 있었지
속아도 보았고 속여도 보았지
이 한낮에 나는
마을에서 먼 물가에 앉아서
강 건너 먼데 수탉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나처럼 지난 생의 누구도  물가에 앉아서
똑같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강 건너 뭔데 수탉 우는 소리에
귀 기울였을 테지

나처럼 또 앞 생의 누구도 이 물가에 앉아서
강 건너 수탉 우는 소리에
회한의 한숨을 쉬게 될까

바람이 차다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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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 김혜린

물레 위에서 점토를 돌린다
선생님은 마음의 형태대로 도자기가 성형된다고 말했다
점토가 돌아가는 물레가 있고
물레는 원을 그린다
물레가 빚어내는 바람이 원의 형태로 부드럽게 손을 휘감는다

생각하는 동안 점토는 쉽게 뭉그러지고
도자기는 곡선이지만 원은 아닌 형태로 성형된다
가끔 한쪽으로 기울고 일그러진다

그러는 동안 창밖의 개들은 풀밭 위를 빙글빙글 돈다
꼬리를 쫓으며 도는 개의 주변으로 풍경이 둥글게 말린다
부드럽고 단단한 개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수백 개의 동그라미들

개들을 보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무엇을 그리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잘 재단된 옷을 입고
같은 사이즈의 길을 걷는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언젠가 집으로 연결되는 길에서
길을 잃는 방법을 잃어버린 동네에서
구획이 잘 나누어진 길을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어느새 공원은 개들이 풀어놓은 동심원으로 가득 찬다

나는 원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꼬리에 시선을 두고 여백에 시선을 두고 선에 시선을 두고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면 더 많이 돌 수 있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내 손끝과 반대쪽 손끝 사이의 거리를 잰다
선은 아름답게 구부러져 있다

원이 아닌, 모든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직 백자가 어떤 모형으로 구워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정성 들여 유약을 칠한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길에서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희고 맑다

어느새 풍경은 백자가 되어 있다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3010201032712000001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 김혜린

■ 시물레 위에서 점토를 돌린다 선생님은 마음의 형태대로 도자기가 성형된다고 말했다 점토가 돌아가는 물레가 있고 물레는 원을 그린다 물레가 빚어내는 바람이 원의 형태로 부드럽게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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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5ZvIk9Bt

‘마음의 형태’를 부드러운 조형미에 빼어나게 견줘

■ 시 심사평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세밀하게 읽었다. 작년에 비해 응모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응모작들의 수준은 높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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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자 마음먹으면 티끌에도 우주가 보여

■ 시 당선소감오늘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면 집 앞을 쓸어야 하지만, 저는 여전히 눈은 좋은 소식이라 생각해요. 투고하던 날에는 할머니가 꿈에 나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좋은 징조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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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광대처럼 살고 싶다 / 용혜원

지금의 삶과 내 모습과 전혀 다르게
생뚱맞고 전혀 딴판으로
나는 가끔 미친 듯이 춤추고 노래하는
광대처럼 살고 싶다

나약함과 초라함을 벗어던지고
광대처럼 통 크게 미친 듯 춤추고
신바람 나게 노래하며 살고 싶다

세상을 풍자하며 웃고 떠들고
온갖 익살을 떨며
함께 울고 폭소를 터뜨리며 살고 싶다

삶을 마음껏 표현하고 나타내며
흉내 내고 비웃고 조롱하고
역설하는 광대처럼
풍자하며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다

나는 가끔
이 풍진세상에서
광대가 되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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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사에서 / 김도솔


  정방사 지장전 앞
  늙은 소나무 한 그루

  기울어진 제 한 몸 지탱하기 힘든 벼랑
  류머티즘에 걸린 손마디처럼 온전한 가지라고는 없다

  삭정이까지도 고스란히 무게로 짊어지고
  온몸의 중심을 뿌리에 두고 버티고 있는 나무

  한번 기울어진 중심은 다시 고쳐 세울 수 없어
  고달픈 그 자리가 생의 전부 인 채

  모진 풍상으로 휘청거릴 때마다 늘어가는 옹이지만
  범종 소리에 제 속에 쌓인 옹이 하나씩 내려놓으며

  다람쥐도 품고 참새도 품어가며
  온전히 등을 내어주는

  못내 눈에 아리는
  등 굽은 소나무  


ㅡ《백화문학》 2024년 19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등이 굽은 소나무를 보고
못내 눈이 아리는 화자의 마음은

"등 굽은 소나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상징
이를 통해 화자의 인생의 굴곡과 고난을 표현.
소나무의 굽은 모습은 강인함과 인내를 나타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은 화자의 내면의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지속적인 인상: "못내 눈에 아리는"은 그 소나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화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화자가 그 소나무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마음에 남아 있음을 나타냅니다.

화자는 강인하면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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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 조오현(1932 ~2018)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을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어서였다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2012. 문학사상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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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성부

포송이야기/詩 2024. 3. 11. 11:38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ㅡ시집 《우리들의 양식》 1974.



이성부 시인은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1942년 1월 22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2012년 2월 28일에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광주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바람' 당선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참여시인으로서 사회반영적 주제를 많이 다루어 참여문학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나,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놓지 않고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표시로는 '벼'와 '봄'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수능특강 교재 등에 실려 있으며, 2001년 제9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2007년 제1회 가천환경문학상 시부문, 2010년 제18회 공초문학상, 2011년 제24회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우리들의 양식>, <지리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등이 있습니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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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 황봉학


배동바지가 되면 뻘대추니처럼 고추잠자리가 날고
발김쟁이 같은 족제비가 밤마실을 쏘다닌다
백일홍은 계명워리처럼 어정잡이 같은 벌
모도리 같은 나비를 불러
풋바심하듯 밀애를 즐기고
도사리처럼 떨어지는 꽃잎은 그래도 백일은 붉다
매나니 먹은 삽살개도 발정을 구듭하느라
옆집 암캐를 불러들여 꽃잠에 들고
헤살부리는 생쥐는 지레 겁을 먹고 사로잠에 든다
군치리에서 취한 할아비가 다림방에서 사온
돝살 한 근이 할미의 고쟁이를 벗기고
얼치기 사랑놀이가 바라지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놀라
하리들어 반둥건둥 얼락배락해버리고
그래도 배시시 웃는 할미가 어여쁜지
징거둔 호박잎 쑤셔 넣고 곰방대에 불을 붙여
할미에게 건네고 잡살뱅이 가득한 등잔불 아래
밤이 늦도록 가재기 사랑을 썰레놓는다.


ㅡ《월간문학》2016년 12월호


ㆍ갈: 가을
ㆍ배동바지: 벼, 보리 따위의 이삭이 나오려고 대가 불룩해질 무렵.
ㆍ뻘대추니: 제멋대로 짤짤거리고 쏘다니는 계집아이

ㆍ발김쟁이: 명사_ 못된 짓을 하며 마구 돌아다니는 사람.
ㆍ족제비: [족쩨비]
ㆍ밤마실: 명사_ 밤에 이웃이나 집 가까운 곳에 놀러 가는 일.

ㆍ계명워리: 명사_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ㆍ어정잡이: 명사_ 겉모양만 꾸미고 실속이 없는 사람.

ㆍ모도리: 명사 빈틈없이 아주 야무진 사람.
ㆍ풋바심하다: 동사 농업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미리 베어 떨거나 훑다.

ㆍ도사리 1: 명사 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

ㆍ 매나니: 반찬 없는 맨밥.
ㆍ구듭: 명사 귀찮고 힘든 남의 뒤치다꺼리.
ㆍ꽃잠: 1.명사 깊이 든 잠.
2.명사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

ㆍ헤살부리다
ㆍ사로잠:명사 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

ㆍ군치리: 명사 개고기를 안주로 술을 파는 집.
ㆍ다림방[다림빵] 1 다림房: 명사 다리미질을 하도록 꾸며 놓은 방.
ㆍ얼치기:
1.명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
2.명사 이것저것이 조금씩 섞인 것.
3.명사 탐탁하지 아니한 사람.
ㆍ바라지 2: 1.명사 건설 방에 햇빛을 들게 하려고 벽의 위쪽에 낸 작은 창. 쌍바라지, 약계바라지 따위가 있다.
2.명사 건설 누각 따위의 벽 위쪽에 바라보기 좋게 뚫은 창.
ㆍ반둥건둥: 부사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성의 없이 그만두는 모양.
ㆍ얼락배락하다: 동사 성했다 망했다 하다.
ㆍ징기다 ( 활용형: 징겨두다 ): 타동사 방언 ‘간직하다’의 방언(경상)
ㆍ잡살뱅이: 명사 여러 가지가 뒤섞인 허름한 물건.
ㆍ가재기: 명사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 물건.
ㆍ썰레놓다:동사 안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다.

※처음 본 단어들로 가득찬 시를 읽었다. 전문적으로 우는 법 익혀야 하리~ 란 문정희 시인의 《곡비》가 떠올랐다. 우리말도 꾸준히 공부해야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림방’을 ‘㉠다리미질 하도록 꾸며 놓은 방’, ‘㉡푸줏간의 잘못된 표현(다림방02 → 푸줏간)’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림방’을 ‘고급 음식점’을 의미하는 낱말로 보지 않고 있으며, ‘고기를 파는 가게’를 의미할 때는 ‘다림방’이 아닌 ‘푸줏간’으로 표현하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배동바지" 시기는 벼와 보리의 생장 주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기에 해당합니다:

- **벼**: 벼의 배동바지 시기는 보통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입니다. 이는 벼가 이삭을 맺기 직전의 시기로, 이 시기에 벼의 대가 불룩해지기 시작합니다.
  
- **보리**: 보리의 경우, 배동바지 시기는 보통 4월 중순에서 5월 초 사이입니다. 이는 보리가 이삭을 내기 직전의 시기로, 이 시기에 보리의 대가 불룩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기는 기후와 재배 환경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별로 배동바지 시기가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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