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 성재경
그날은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굴비 한 손 보리쌀 한 됫박 머리빗 한 개
아무도 물건을 팔지 않았다
식육점도 포목점도 어전도 닫혀 있었다
아우내장터 그날은
아무도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수다쟁이 할매도 짓궂던 더벅머리 총각도
비틀거리거나 들내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 앞만 보고 내디뎠다
사월 초하루 그날은
아무도 부모 자식 걱정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람들이 모여
가슴과 가슴이 손과 손이 만났다
목이 터져나가던 그날은
그들의 손엔 어떤 쇠붙이도 없었다
그 흔한 낫 한 자루 부엌칼 호미마저도
삐뚤게 그린 태극기와 맨주먹
만세 부르는 입과 충혈 된 눈이 전부였다
유관순의 아우내장터 그날은
붉은 피에 또 뜨거운 피가 엉기고
죽음 위에 볏단처럼 주검이 덮여갔지만
그날은 이 나라 정신이 바로 세워지고
비로소 광복이 시작되는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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