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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허형만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먼 하늘로 별빛 푸르다

 

바람은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재두루미 훠이훠이 하늘을 품는데

손 내밀면 잡힐 듯

발 디디면 내달릴 듯

눈앞에 두고도

사람만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비무장지대여

 

그러나 우리 슬퍼 말자

그리움은 희망을 낳는 법

손 내밀어 따뜻이 손잡고

발 딛어 발목이 시리도록 내달릴

그리하여 마침내 어루얼싸 하나가 될

그날이 우레처럼 오리니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먼 하늘로 별빛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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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슴도치의 사랑 / 손해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지만

껴안을수록 아프구나

남북분단 60여년

입버릇처럼 통일과 화합을 외치고도

이념의 날선 가시

속절없이 상처 주고받는

고슴도치의 사랑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젖은 숲 덤불에 웅크린 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자존의 기 싸움

미움이 깊어질수록

어쩌자고 자꾸 그리움도 쌓이는데

이정표 스치듯 빠른 물살에

더욱 멀어지는 뒷모습

우리 이제 다시는

피 흘리지 말아야 하리

번뇌를 삭발하듯 곧추선 가시를 접고

비무장지대 황토밭 고랑이나

무성한 억새밭에

한 바람 훈풍으로 섞여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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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풍장(風葬) / 송수권

 

오늘은 할아버지 고향 가는 날

차마 성한 육신백발로는 가지 못하고

혼백으로 바람 타고 가는 날

살아서는 산도 옮길 듯한 한이 삭아서는 한줌의 재

물길 따라 바람 따라 고향 가는 날

바람아 불어다오

 

추석달이 뜨면 갈거나

임진각 누마루에 올라

함부로 북녘땅 여기저기 손가락을 디미시던 할아버지

어느 날은 채송화며 봉숭아

꽃씨 주머니를 풍선 끝에 매달아

바람도 없는 날

우우우우.....

입으로 불어 올리시던 할아버지

 

조선호텔 로비에선 웬수같기만 하던 얼굴이

TV화면에 불꽃처럼 스치던 날

예수당이 강냥욱이 지금도 살아 있었수구레

동갑내기라고 좋아서 껄껄 웃으시며

여기 땅문서가 있다고 고의춤 풀어놓고

손바닥을 흔들던 할아버지

 

임진강 나루목을 건너 저기 저 개성 뒷산을 넘어서

황해도 해주 근처 옹진반도 안악골까지

바람아 불어다오

오늘은 할아버지 물길 따라 바람 따라

고향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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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끊어진 철길 / 신경림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

사이다 병이나 맥주 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 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 벌 북쪽 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세밑 사흘 늦어 배달되는 신문을 보면서

농사꾼 이철웅씨는 남방한계선 근처 자연꿀 따기는

올해부터는 그만 두어야겠다 생각한다

'금강산 가는 '이라는 푯말이 붙은 인근

버렸던 땅값 오르리라며 자식들 신바람 났지만

통일도  가지고 하는 놀음인 것이 그는 슬프다

그에게서는 금강산 가는 철길뿐 아니라

서울 가는 버스길도 이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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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곰나루의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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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숲에 서서 / 신석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버레소리 젖어 흐르고

버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드라

성글어 좋드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드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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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날이 오면 / 심 훈 

 

그날이 오면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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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울로 가는 전봉준 /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 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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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노래하리라 / 오세영

 

내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을 노래하리라

수 억 만 년 전

까마득히 하늘이 처음 열리고

이 땅이 생명의 감동으로 전율하던 날

지구의 동쪽찬란히 해 뜨는 곳에 한

목소리가 울렸나니

 

그로 하여 한 민족이 태어났고

그로 하여 한 세계가 깨어났노라

아아한국어

그가 꽃을 부르면 꽃이 되고

그가 구름을 부르면 구름이 되고

그가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사랑을 부르면 또 사랑이 되었나니

수 천 년

이 신성한 땅의 주인들은

그 어느 곳보다 밝고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들의 생존을 영위해 왔다

 

비록

태양의 율법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의 배면엔

가끔 엷은 그림자가 드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꽃이 가장 꽃답게 피고

짐승이 가장 짐승답게 뛰놀고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 왔던 땅이

이 말고 세상 그 어디에 또 있으랴

 

지금 세계사는

고단한 역사의 능선에서 밤을 맞고 있으나

우리는 신성한 우리의 모국어로 이 밤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세계를 새롭게 명명할 것이다

아아한국어

그 순결한 언어로

내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을 또 노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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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울릉도 /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沈海線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沈海線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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