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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철조망에 걸린 편지 / 이길원

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 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숱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덤가엔
가시 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스러질 때까지 걷힐 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덤가에 한가로이 몰려오지만
어머니,
이 땅의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 듯 온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 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위에 뜨거운 흙 한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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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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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별 헤는 밤 윤동주 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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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고려인 / 이근모

시베리아 북풍한설 내 핏줄을 얼게 해도
해오름달이나 매듭달이나 언제나 멈춤 없이
흘러 흘러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핏줄은 얼지 않았는데 마음이 얼었습니다
천 년의 바람과 천 년의 구름이 자리한 하늘 아래
혈의 정체성을 찾아 대를 이은 혼불이 광야를 누볐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천
나의 세포 되어 마음 구석구석 자리 틀고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혈맥으로
백두까지 한라까지 뻗을 수 있기를 염원하였습니다.

하얀 순백의 옥양목에 떨어뜨린 쪽물처럼
그 혈흔, 시베리아 벌판에 점을 찍고
한민족 영혼으로 승화해 왔습니다.

아,
나의 조국!
늘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 부릅니까?
왜 나는 당신의 혈맥 바깥처럼 존재해야 합니까?
내 핏줄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누구의 모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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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이근배


새들은 저희들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
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앞 다투어 길을 나서는 구나

참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
철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
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묏부리
우주만물의 형상이 여기서 빚고
여기서 태어났구나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
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
소나무, 잣나무는 왜 이리 늦었느냐 반기고
구룡폭포 천둥소리 닫힌 세월을 깨운다

그렇구나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 두고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구나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
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
이제 손에손에 삽과 괭이 들고
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아왔구나

한 식구 한솥밥 끓이며 살자는데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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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쁜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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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

그리라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하나도 빠뜨리지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하나도 빠뜨리지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 육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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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백두산 / 정호승

백두산은 울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잠을 못 이루고
두만강을 따라 몇 번씩 몸을 뒤채이다가
온몸에 흰눈을 뒤집어쓴 채 백두산은 남으로 가고 있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리의 사랑이 언제가 다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두만강을 건너 묘향산을 지나
백두산은 한라산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던 미인송들도
어깨의 눈을 털고 백두산을 따라가고
멀리 흰 바다 폭을 펼친 듯 흐르던
백두폭포도 말없이 백두산을 따라가고 있었다

백두산 사슴 떼들도 자작나무도
장백패랭이꽃도 바위종달새도
백두산을 따라가고 백두산이 한 번씩 발을 쿵쿵 내디딜 때마다
천지의 푸른 물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백두산은 휴전선 앞에서 울고 있었다
하늘 끝도 갈라진 휴전선을 뛰어 넘다가
무릎을 꺾고 쓰러지고 말았다
천지의 물은 그대로 쏟아져
평양과 서울을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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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안중근 의사 讚 - 조지훈

쏜 것은 권총이었지만
그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당신의 손가락이었지만

원수의 가슴을 꿰뚫는 것은
성낸 민족의 불길이었네
온 세계를 뒤흔든 그 총소리는
노한 하늘의 벼락이었네

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차라리 홍모(鴻毛)와 같이
가슴에 불을 품고 원수를 찾아
광야를 헤매기 얼마이던고

그날 하르빈 역두의
추상같은 소식
나뭇잎도 우수수
한 때에 다 떨렸어라.

당신이 아니더면 민족의 의기를
누가 천하에 드러냈을까
당신이 아니더면 하늘의 뜻을
누가 대신하여 갚아줬을까

세월은 말이 없지만
망각의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서 가지만

그 뜻은 겨레의
핏줄 속에 살아 있네
그 외침은 강산의
바람 속에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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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국토서시(國土序詩) /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닮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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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나의 조국 / 한석산

이 땅에 뿌리 내린
오천 년 역사의 칠천만
단군의 위대한 후예들
참된 애국 혼을 불러일으킬
장엄한 웅비(雄飛)

누군가 자꾸만 흔들어 깨우는
큰 뜻 서린 천지 기운
조용한 아침의 나라
내 조국 내 겨레
두 갈래로 갈린 우리민족

한 핏줄 남과 북의 혈맥을 이어
온 겨레가 하나
배달민족의 투혼으로
영원히, 영원히 꺼지지 않는
동방의 등불 나의 조국
찬란한 내일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의 소망 인류의 희망
젊은이여 가슴을 펴라
조국이여 날개를 펴라
푸른 창공을 맘껏 비상하라
더 높이 더 멀리
온 누리로 뻗어 나가라.
너희는 모두가 세상의 빛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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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님의 침묵(沈黙)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黙)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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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 눈부심 불기둥 되어 / 허영자

먼 옛날 하늘이 열리는 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베풀어 펼친
거룩한 홍익인간의 정신
그 지혜를 면면히 이어온 반만년입니다.

쑥과 마늘 쓰겁고 매운 맛을 이겨낸 힘으로
고난과 고통과 억압과 슬픔의 사슬
아리는 아픔을 견뎌온 이 땅 백성들입니다.

회오리바람 비바람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새 문자를 만들어 등불을 밝히고
시와 노래와 춤 청청한 신명으로
가꾸고 다듬어온 이 나라입니다.

산이여 들이여 강이여 그리고 출렁이는 바다여
나무여 풀이여 뭇짐승이여 벌레들이여 그리고 사람들이여
우리들의 살 속에는 피 속에는
흘러간 역사의 솔바람소리 맑게 배어 있거니

이제 즈믄 해의 닭 울음소리 새벽을 앞두고
백두와 한라가 두 손을 마주잡은 잔치에
둥둥 북소리 높이 올리며
흰옷입고 달려갈 배달겨레입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빛도
우리들 소망 위에 영롱히 비치거니
그 눈부심 불기둥 되어
하늘 중심을 겨누어 활활 타오릅니다.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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