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地球가 회전廻轉하는 대로/ 신석정
거센 바람에 따르는 바다의 함성喊聲이라거나 밀림密林을 포효咆哮하는 짓궂은 짐승들의 몸짓이라거나 너와 나의 가슴을 두고 두고 왕래하는 불덩어리 같은 것이라거나 생각하면 짐짓 생각하고 볼 양이면 그것은 지구가 회전하는 대로 누적累積되는 검은 역사의 한 자락을 스쳐가는 바람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췰 감출 수 없는 바람결이다>
터지는 양광陽光의 그 다사로운 품안에서 너를 달래고 나를 달래고 또 이웃을 달래고 몇 번이고 눈짓하고 끝내는 바스러지게 포옹을 할지언정 그것은 지구가 회전하는 대로 누적되는 검은 역사의 한 자락을 스쳐가는 포말泡沫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영 스러질 수 없는 포말이다>
할딱이는 숨결로 이 치사스런 생명과 시時를 다스리며 더러는 슬기로운 전쟁으로 불장난을 하고 더러는 삶과 죽음의 건널목에서 독을 머금은 혓바닥으로 꿈과 생시를 의논하며 녹이 슬었을 극락極樂을 의욕하지만 <지구>라는 지옥에서 허덕이는 한, 그것은 지구가 회전하는 대로 누적되는 검은 역사의 한 자락을 스쳐가는 꽃가루였다.
<그러나 그것은 뜨거운 필 머금은 꽃가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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