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덤불 / 신석정

꽃덤불 /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해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꽃덤불: 화합된 조국
해방 직후인 1946년《해방 기념 시집》에 수록

꽃덤불 /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해매이면서
언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완전한 조국의 광복: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죽은)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유랑하는)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변절한)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전향한)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광복 후 혼란스러운 조국의 상황)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태양ㆍ오롯한 태양ㆍ봄: 화자가 지향하는 가치
태양을 등진 곳ㆍ헐어진 성터ㆍ겨울밤 달: 암담한 현실을 드러내는 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