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 오새미
덩굴장미를 만지고 온 바람이
피에 젖은 손바닥을 보여주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흘리는데
찔레꽃 사연이 박혀있다
발이 묶인 바람은 붉은빛을 띠었고
날개 달린 얼굴은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한 무리의 바람을 토해놓고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구름버스
내일의 비를 머금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허공으로 귀가하는 늦은 오후
낯선 그림자들의 어깨에 걸쳐있는
한 짐 바람의 무게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어
멀어지는 별빛처럼 스러지는데
가시에 찔렸던 날들의 상처는
가여운 질량을 기록해 놓은 빛바랜 잎사귀
물풀처럼 떠돌다 쓰러지기만 했던
텅 빈 저녁이 쓸쓸하다
밀도 높은 하루가 쌓이고
밤은 바람에 밀려
어둠의 가시를 퇴적하다 잠든다
바람에 제 발등을 찍힌 저녁
바람의 측량사는 얼굴이 없어
가시에 찔린 표정만 날아다닌다
⸺계간 《열린시학》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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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새미 / 본명 오정숙. 2018년 《시와 문화》 등단. 시집 『가로수와 수학시간』 『곡선을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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