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래 / 이정록
제 얼굴로 겨눴던 부채 끝을
어린것들에게 돌리는 데까지 가야
마음도 주름을 접고 편해지는 거여
자네도 땀 범벅인 몸뚱어리 제쳐놓고
새끼들한테 부채질하는 것을 보니께
이제 진짜 어미가 된 것 같구먼
세상에서 첫째로 독한 짐승이 어미라는데
어미 중에서도 제일 독한 홀어미가 되었구먼
신랑 생각은 빨리 털어버리고
여기에다 맘 붙이고 살아가자고,
멍하니 평생 바다 끝만 내다볼 것 같더니
어찌어찌 새끼들 추스리는 것을 보니께
이제 가라고 해도 안 가겠지만
바람아래 떠나는 순간
세상 바람통 속으로 겨 들어가는 것이여
저 뻘 속 모래알들이 어찌 그냥 모래들이고
어찌 그냥 조개껍질이겠는가
억만 번도 더 달래고 얼래야
밀물 썰물 몽땅 품을 수 있는
오지랖이 되는 거여
그런 걸 몸이라고 하는 거여
*바람아래는 안면도 바닷가에 있는 해수욕장 이름이다
ㅡ이정록 시집《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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