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과 바람 / 정완영
옛날 우리 마을에서는 동구洞口 밖에 연蓮밭 두고
너울너울 푸른 연잎을 바람결에 실어두고
마치 그 눈 푸른 자손들 노니는 듯 지켜봤었다.
연밭에 연잎이 실리면 연이 들어왔다 하고
연밭에 연이 삭으면 연이 떠나갔다 하며
세월도 인심의 영측도 연밭으로 점쳤었다.
더러는 채반만 하고 더러는 맷방석만한
직지사 直指寺 인경소리가 바람타고 날아와서
연밭에 연잎이 되어 앉는 것도 나는 봤느니.
훗날 석굴암 대불이 가부좌하고 앉아
먼 수평 넘는 돛배나 이 저승의 삼생三生이나
동해 저 푸른 연잎을 접는 것도 나는 봤느니.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며
바람에 인경 소리를 실어봄 즉 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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