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우포 여자 / 권갑하
설렘도 미련도 없이 질펀하게 드러누운
그렇게 오지랖 넓은 여자는 본 적이 없다
비취빛 그리움마저 개구리밥에 묻어버린
본 적이 없다 그토록 숲이 우거진 여자
일억 오천만 년 단 하루도 마르지 않은
마음도 어쩌지 못할 원시의 촉촉함이여
생살 찢고 솟아오르는 가시연 붉은 꽃대
나이마저 잊어버린 침잠의 세월이래도
말조개 뽀글거리고 장구애비 헐떡인다
누가 알리 저 늪 속 같은 여자의 마음
물옥잠 생이가래 물풀 마름 드렁허리
제 안을 정화시켜온 눈물 보기나 했으리
칠십만 평 우포 여자는 오늘도 순산이다
쇠물닭 홰 친 자리 물병아리 쏟아지고
안개빛 자궁 속으로 삿대 젓는 목선 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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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의 「우포 여자」는 우리나라 최대 내륙 습지인 경남 창녕군에 있는 우포늪을 소재로 한 시조입니다. 5수로 된 우리의 전통 시조 가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작품이죠.
「우포 여자」는 우포늪의 원시성과 여성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포늪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넓은 늪지대가 품고 있는 원시성은 현대인들의 흔들리고 산만한 삶을 갈무리하기에 충분합니다. ‘일억 오천만 년 단 하루도 마르지 않은/마음도 어쩌지 못할 원시의 촉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살 찢고 솟아오르는 가시연 붉은 꽃대/나이마저 잊어버린 침잠의 세월이래도/말조개 뽀글거리고 장구애비 헐떡이’는 늪지대는 장엄한 침묵 속에서 대지의 호흡을 느끼게 합니다.
우포늪을 ‘우포 여자’로 의인화하여 나타냄으로써 여성성과 생산성을 통해 대지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설렘도 미련도 없이 질펀하게 드러누운/그렇게 오지랖 넓은 여자는 본 적이 없다/비취빛 그리움마저 개구리밥에 묻어버린’ 곳. 또한 ‘숲이 우거진 여자’, ‘원시의 촉촉함’, ‘말조개 뽀글거리고’ 등의 구절을 통해 여성적 관능미를 불러일으키고, ‘가시연 붉은 꽃대’, ‘장구애비 헐떡인다’ 등을 통해서는 여성성 위에 눈을 뜨는 남성의 성행위까지 연상하게 하는 감각적 재미를 더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안개빛 자궁 속으로 삿대 젓는 목선 한 척’-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은 수컷과 암컷의 교접으로 이 우주의 생명성이 영속되고 있음을 넌지시 이야기해주는 듯도 합니다.
「우포 여자」는 우포늪의 원시성과 여성적 이미지를, 그 속에 태어나고 자라는 동식물 등을 통해 구체화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했지만, 추하지 아니하고 성스럽게 탈바꿈시킨 작품으로 읽힙니다. 시인의 상상력과 구체적 감각이 잘 결합된 한 편의 그윽한 그림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ksinews.co.kr/mobile/view.asp?intNum=3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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