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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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상이 있는 국숫집 - 문태준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을 헹궈서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 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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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서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자타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故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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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옛날 국수 가게 - 정진규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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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잔치국수 - 이해인
삶은 하나의 축제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잔치국수를 먹다 보면
외로운 이웃을 불러 모아
큰 잔치를 하고 싶네
우정의 길이를 더 길게 늘려서
넉넉한 미소로 국수를 삶아
대접하고 싶네
 
쫄깃쫄깃 탄력 있는
기쁨과 희망으로
이웃을 반기며
국수의 순결한 길이만큼
오래 오래 복을 빌어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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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홍두깨 칼국수 - 최돈선
비는 오는데 어머니는 오지 않는다
누가 칼국수를 끓여주나
소년은 어느 새 늙어 손수 칼국수를 끓인다
텃밭에 방금 난 햇감자 넣고
울타리 애호박 뚝 따
숭숭 칼질하여 국수를 끓인다
푹 끓여야 해 얘야
어머니의 잔소리 산메아리뿐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홍두깨
시렁 밑 마루 한구석에
늘 혼자 기대어 있던, 따스한 손길
어머니 어머니
이 비 오는 날 쓱쓱 밀어준 칼국수
문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둥근 상에 뽀얗게 분칠하고
새색시같이 서툴게 홍두깨를 민다
멸치 육수도 안 낸 채
그냥 맹물에 국수를 끓인다
오래 오래 푹 끓이렴 얘야
호박채 푸르게 익은 감자 칼국수
후드득 후드득 호박잎에 비 온다 얘야
풋고추 양념장에 눈물 몇 방울
정물처럼 얹혀
오랜 시간 후룩 후룩, 목 메인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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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부여 옛날 국수집 - 유종인
흰 버들가지 같은 면발들 건조대에 내걸렸다
저 안에서 어떤 허기가
수렴청정하듯 배부른 말을 가르치실까
 
옛날에 나는 오늘을 살 줄 알았을까 보다
옛사람도 출출하여 오늘을 다 못 사셨을까 보다
뱃구레가 꺼져버린 지 언젠데
출출함은 죽음도 내치지 못한 몸종인 듯
그예 국숫집 골목으로 곡두 양반들 걸어든다
 
국숫집 쥔장은 묵묵하다 익반죽만 한다
아내의 새색시 적 부끄러운 속살을 넣고 치대도
옛날은 옛날이라 호시절은 잘 뽑아지지 않는다
국숫집 주인은 잘 마른 국수 다발에
드륵드륵 칼을 들이댄다
 
그예 소식이 없던 당신도
부여 국숫집 문간에
옛날 돈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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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수집 – 윤의섭
말간 국수집 강릉 가는 길가에 갑자기 솟아난 섬처럼 놓여 있는
국수나무 바람에 잠깐씩 깨어나는 마당 인적 없어도
한 방 가득 복작거리는 천지간 국수집
질긴 면발은 가장 늙은 지층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선 국수비가 쏟아지는가
희뿌옇게 김서린 유리창 너머
한 입 가득 국수를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사람
덩그렇게 앉아 있는 하얀 소복 국수사리
곧 폭설이 몰아칠 것이다
 
여기 와서야 넋 놓고 겨울 진경을 보자 했구나
동지 석 달은 한 그릇 말아 벌써 먹어 치웠어
길이 끊기겠지
한 가닥 모질게 남은 면발이 아직 이어져 있는 것도 같아
선한 눈매가 지워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랜만이지
 
누가 어디 다녀왔냐길래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람이 한 꺼풀 걷혔지만 설산은 그대로였고
말간 국물에 한소끔 먹먹히 잠겨 있는 저녁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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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빔국수를 먹으며- 목필균
동대문 시장
옷가게와 꽃가게 사이
비좁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는다
 
혼자 먹는 것이 쑥스러워
비빔국수만 쳐다보고 먹는데
푸른빛 상추, 채질된 당근
시큼한 김치와 고추장에 버물려진
국수가 맛깔스럽다
 
버스, 자가용,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뒤엉킨 거리
옷감 파는 사람과 박음질하는 사람
단추, 고무줄, 장식품을 파는
크고 작은 상점이 빼곡한 곳
가난과 부유가 버물려져 사는
동대문 시장
 
가족과 동료, 시댁과 친정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나와 버물려져 사는 사람들
 
새콤하고 달콤하고 맵고
눈물 나고 웃음 나고
화나고 삐지고 아프고
그렇게 버물려진 시간들
울컥 목구멍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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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홀한 국수 - 고영민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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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제5회 대청시낭송전국대회 _본선 진출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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