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을 위하여] ― ‘말의 가락’
□ 서민을 가격(加擊)하는 소주 가격(價格) 인상
서민이 부담 없이 마시던 술. 소주 가격이 올랐고, 또 오르며, 그리고 오를 전망이란다.
‘가격(加擊)’은, “손이나 주먹 그리고 몽둥이 따위로 때리거나 침”이라는 뜻이다. ‘더 할 가(加)’는 평성으로 단음이고, ‘칠 격(擊)’은 ‘측성(仄聲)’에 속하는 ‘입성(入聲)’으로 촉급한 소리다.
이 ‘가격(價格)’의 장단 구조는, ‘평+측’ 구조다. 이런 평측 구조에선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 측성 앞에서 평성은, 아연 놀란 듯 그 소리의 길이가 더욱 짧아지며, 높아진다. 이를 ‘평고조(平高調)’ 현상이라 한다. 이 현상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는 규칙과도 같다. 측성 앞에서 평성이 고조되는 현상은, 보편성을 띤다. 달리 말하면 ‘단+장’의 구조에서 ‘단’이 극단음으로 발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서처럼 [가격]이라고 두 음절 모두 단음으로만 발화하라는 건,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자가 발음하는 것과는 팔팔결 다르다. [가격]은, 현실에서의 실제 발음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가(加)’의 소리 길이가 가장 짧게 발음되는 ‘극단음(極短音)’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문장이 만일 “가격”으로 끝난다면, ‘극단+단’의 길이가 된다. 왜냐하면 촉급한 소리라는 입성으로서의 ‘격’의 받침 ‘ㄱ’은, 폐쇄음이므로 발화하자마자 닫쳐 버리기 때문이다. 입성은 촉급한 소리지만, 측성에 속한다. 측성엔 ‘상성·거성·입성’이 있다. 이 측성 앞에서의 평성(=단음)은 언제나, 늘 변함없이 평고조된다.
문자란, “구어(口語)의 의사소통 체계를 지시하는 표지며, ‘Writing’과 ‘letter’의 통합체로서 인간의 언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장음이라든지, 강세와 고조 등의 기호로 청각을 시각화해주어야 한다. 여러 나라의 사전이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음 사전’에도 여러 기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모든 소리를 표현하는 기호가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그런데 “가격“에서와 “가격하는”에서의 ‘격’의 소리는 달라진다. 우리말에서 음절의 길이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 그 변화를 담아내야 비로소 말하듯 하는 낭독이 가능해진다. 우리말은 교착어이기 때문이다. 조사나 어미 등이 없는 고립어로서의 중국어와 달리 고정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우리말은 우리말의 특징에 따라 발화해야 우리말다워진다. 간단한 이치 아닌가.
“가격”의 첫음절 '가'는 극단음이고, 둘째 음절 ‘격’은 촉급한 소리이므로 두 음절 모두 짧디짧은 소리로 ‘극단+단’으로 발음된다. 그러나 “가격하는”에서는, ‘극단+장+단+장’의 구조가 되어 둘째 음절 ‘격’이 장음화된다. 이때의 장음은 보통의 장음처럼 장모음이 아니라, 장자음이다. ‘장모음’은 한 음절에서 모음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고, ‘장자음’은 자음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소리 없는 ‘묵음의 길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는”의 장단 구조는, ‘단+장’이다. 따라서 ‘하’는 더욱 짧아지고, ‘는’은 장음의 제 성질대로 길게 발음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하’는 무점이고, ‘는’은 방점을 찍어 놓았다. 방점은 장음 표시다. 그래서 “가격하다”는 [디땅:디땅:]의 느낌으로 발화하면 마침맞을 것이다. 혹은 ‘가’를 16분음표, ‘격’을 4분음표, ‘하’를 16분음표, ‘다’를 8분음표쯤으로 발화한다면, 실제의 모국어와 가장 가까운 발음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써만 이를 다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말의 고저장단 앞에서 나는 늘 무력할 뿐이다.
‘가격(價格)’은 [가ː격]으로 '가'가 길게 발음된다. ‘값 가(價)’는 거성으로 장음이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가격]으로 표시됐다. 두 음절 모두 단음으로 읽으라 지시한다. 그러나 ‘값 가(價)’는 거성으로 장음이므로 길게 읽어야 한다. 사전의 오류다.
“소주의 가격 인상으로 가격당하는 서민”을 ‘가격(加擊)’과 ‘가격(價格)’의 제 음의 장단에 맞게 발음해보자. 특별히 아나운서·성우·배우 지망생들에게는, 혹여 다소라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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