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가의 소소한 단상] ―‘한미(韓美)와 한국(韓國)'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 말이다.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 뉴스에서 “한미동맹”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한미(韓美)”를 [한:미]로 발음하는 아나운서가 많다. “한미”의 첫음절 ‘한(韓)’을 장음으로 발음하다니...?! 우리말은, 한자의 상성과 거성을 장음으로, 그리고 평성을 단음으로 발음한다. 이 말의 규칙은, 여느 규칙과 달리 예외가 없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니까 ‘한(韓)’이 상성이나 거성이어야 장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韓)’은 평성으로 단음이다. 긴 건 길게, 짧은 건 짧게 읽으면 그만인 아주 간단한 문제 아닌가. 내 귀가 다 의심스러워 몇 번이고 다시 들어봤다. ‘한(韓)’을 단음으로 발음하는 아나운서가 아예 없진 않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한(韓)’은 평성으로 단음이고, ‘미(美)’는 상성으로 장음이다. 그런데 아나운서 대부분이 ‘한(韓)’을 장음으로, ‘미(美)’는 또 단음으로 발음한다. 뒤집혔다.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일이다. 영어가 강세 언어고, 중국어와 일본어가 고조 언어라면 한국어는 ‘장단의 언어’다. 장단이야말로 우리말 특성의 고갱이다.

  안타깝지만, 더러 제대로 발음하는 아나운서의 발음도 실은, 정확한 발음이라고 할 수 없다.
  ‘장음+단음’의 구조에서는, 있는 그대로 첫음절을 길게, 둘째 음절을 짧게 발음하면 된다. 그러나 ‘장음+장음’의 구조에서는, 다르다. 첫음절만 장음으로 발음되고, 둘째 음절은 단음화된다. 따라서 첫음절은 길게, 둘째 음절은 짧게 발음한다. 이 역시 예외 없는 규칙이고, 사회적 약속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한미(韓美)”처럼 ‘단음+장음’의 구조에선, 묘한 일이 벌어진다.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규칙이다. 이런 경우엔, 첫음절의 단음이 돌연 긴장이라도 하듯 아연, 단음이 더 짧아지며 동시에 높아진다. 그리고 둘째 음절의 장음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를 일러 ‘평고조(平高調)’ 현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미(韓美)”는 첫음절을 극단음(極短音)으로 둘째 음절을 장음 발음해야 한다. 한 가지 첨부하자면, 장음은 높은음이라지만, 낮은 데에서 올라가는 소리다. 이런 면까지 고려해서 듣는다면, 불행하게도 정확하게 발음하는 아나운서는 없었다.

  “한국(韓國)"을 [한:국]으로 ‘한’을 아주 길게 발음할 뿐 아니라, '국'까지 길게 발음하기도 한다. ‘국’의 종성 받침은, 폐쇄음이다. 입성이라고 해서 아주 촉급한 소리다. 발화되자마자 내파되고 마는 아주 짧은소리다. 이 촉급한 입성을 중성 모음 [ㅜ]를 길게 발음하는 것이다. 거꾸러 선 것이다. 만일 '국' 뒤에 조사가 붙는 경우엔 길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리 없는 '묵음'의 구간이 생긴 것이다. 저처럼 입성을 읽으며 중성 모음을 장음화하는 것은, 뒤집힌 일이다.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 국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국민의 교과서가 되어야 할 아나운서님들께서 말이다.

사실 이런 일은, 아나운서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라면, 『표준 한국어 발음 사전』(全英雨)과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KBS)에 "한국"을 [한:국]로 해놓은 것이 잘못이고, 또 그를 그대로 베껴 쓴 여러 한국어 사전이 문제일 것이다. 발음사전 편찬자들은, 뒤늦게라도 오류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편찬한 『총독부 사전』에는, [한국]으로 돼 있다. 짜장,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부끄럽다.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는 ‘옥에 티’일 뿐일 것이라 믿는다.
  늘 살아있는 국민의 발음 교과서로서의 아나운서님들을 언제나 응원한다.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n7cJZDp4eqohzPhTCgf8DY6VBRFw3RK33kqybj17CwHugnfQBHfeLhJ8yrwyHvd8l&id=100054589251893&mibextid=Nif5oz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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