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단상] ― ‘시낭송가의 발음 이야기’

  □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경건(敬虔)하다/경건(勁健)하다’

  소리는 똑같습니다만 그 뜻이 서로 다른 말 중에는, ‘경건(敬虔)하다’와 ‘경건(勁健)하다’가 있습니다. ‘경건(敬虔)하다’는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라는 의미고, ‘경건(勁健)하다’는 “굳세고 튼튼하다, 굳세고 힘차다”라는 뜻입니다.

  ‘경건(敬虔)하다’의 ‘경(敬)’은 ‘삼가고 공경하다’는 의미고, ‘건(虔)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한다‘는 뜻을 품습니다. ‘경(敬)’은 거성으로 장음이며, ‘건(虔)은 평성으로 단음입니다. 그래서 사전에는, [경ː건하다]처럼 ‘경’을 길게 발음하라고 장음 기호를 넣습니다. 당연합니다. 거성은, 상성 다음으로 긴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상성과 거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길게 발음되는 소리입니다. 물론 첫음절[=어두(語頭)]에서만 그러합니다. 장음은 어두에서만 실현되고, 뒤에 놓인 장음은 단음화됩니다. (그러나 복합어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비어두에서도 장음이 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말의 장단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답니다.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합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경건(勁健)하다’의 ‘경’은, ‘세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굳셀 경’이라고 합니다. 이 ‘굳셀 경’도 ‘공경 경’과 마찬가지로 거성입니다. 그러니까 장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건(敬虔)하다’처럼 첫음절 ‘경’을 길게 [경ː건하다]로 발음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전에서는, <국립국어원표준대사전>을 비롯해 <네이버 사전>, <다음 사전>, 심지어는 <표준한국어발음사전>조차도 저 ‘경건(勁健)하다’의 ‘경’에 장음 기호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단음으로 발음하라는 것인데, 어찌 ‘거성’을 단음으로 읽으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개인이 낸 여느 사전은 몰라도, <국립국어원>에다가는 “얼른 확인해보고 고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될 테니까요. 혹여 저 거성으로서의 장음인 ‘경(勁)’을 단음으로 발음해야 하는 근거가 있다면 그를 제시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두 형용사 ‘경건하다’는, 경건이라는 어근에 ‘~하다’가 결합한 ‘~하다 형용사’입니다. 이 ‘하다’의 음장은, ‘단+장’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짧은소리고, ‘다’는 긴소리입니다. 그런데 단음은, 장음 앞에서 돌연 짧아지며 아연 높아집니다. 이는 우리말에서 예외 없는 법칙과도 같습니다. 이를 ‘평고조(平高調)’라고 합니다. 단음은 짧기만 하게 아니라, 그 성격이 낮고 잔잔하며 평평한 소리라서 ‘평성’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저 단음이 장음 앞에선 저리 변화되어 돌연 높아집니다. 우리말의 변화무쌍이라니요~! 바로 거기서 우리말의 가락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전에서 제공하는 발음은, 당췌... 말은 말과 글의 제 성격대로, 있는 그대로 발음되어야 합니다. 사전의 발음도 당근,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 두 형용사 경건하다는 모두 표현적 장음이 가능한 형용사입니다. 하다 형용사에서는 ‘하’ 앞의 음절에 장음을 둘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ː건::하다:]로 발음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강조하려고 할 때만 표현적 장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셋째 음절 ‘하’는, 평고조 현상에 따라 ‘극단음’으로 아주 짧게 발음된다는 것, 잊지 않으셨지요~?! 이것이 우리말이고, 우리말의 가락이며 리듬입니다.

그러므로 ‘경건(勁虔)하다’와 ‘경건(勁健)하다’ 둘 다 [경ː건::하다:]처럼 첫음절 경을 길게 장음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 둘은 구별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전혀 구분되지 않으면 곤란하겠지요. 소리의 길이와 높이 강세는 같지만, 이 둘은 구별해야 합니다.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장단의 문제로 해결할 게 아닙니다. 망치만 든 놈은 모든 게 못으로만 보이겠지만, 우리는 문제가 다르면 그 해결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압니다.
  형용사 중에는 감정 형용사가 있습니다. 저 두 형용사는, 바로 감정을 담아 발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 두 형용사가 구분되어 적확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경건(敬虔)하다’는, “공경이 담긴 정서”로, ‘경건(勁健)하다’
’는 “강직하고 굳센 정서”로 발음해야 합니다.
  정서(emotion)는, ‘어조(語調)’에서 나옵니다. 이 어조를 일러 ‘목소리’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어조는, 또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태도’에서 나옵니다. 그럼 ‘태도’는? 태도는, 발화자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대상이 발화자보다 우월하고 본받을만하면 존경의 태도와 어조(=정서)가 나옵니다. 대상이 여리거나 여리다고 느낀다면 여린 어조가 나올 테고, 대상이 굳세다면 강한 어조가 나옵니다.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므로 어조는 주관적일 수도 있습니다.)
   ‘경건(敬虔)하다’는 공경의 정서로, ‘경건(勁健)하다’는 강직한 어조로 발음해야 합니다. 이는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 아나운서에게도 적용됩니다. 감정 형용사만큼은, 감정이 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우나 배우 그리고 시낭송가들은 감정 형용사의 감정표현에 더욱 각별해야 합니다.

   감정(emotion)에 대한 정의와 개념, 그리고 표현방법까지 써야 하겠지만, 글이 길어져서 이만 줄입니다.

   경건(敬虔)하고, 경건(敬健)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94THLqXdACfMn2DLNLfJ9t6BuDXDuE3YNUegdRUUh1DLhZRdgRNvuA6f73CaWWSZl&id=100054589251893&mibextid=Nif5oz

로그인 또는 가입하여 보기

Facebook에서 게시물, 사진 등을 확인하세요.

www.facebook.com

Posted by 시요정_니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