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이 놓친 장음] ― ‘<한 잎의 여자>를 어찌 읽으라고~?!’

“여(女)”는 ‘계집 여, 딸 여, 별 이름 여, 성씨 여’로 쓰일 때는 상성으로 장음이고, ‘시집 보낼 여’로 쓰일 때는 거성으로 역시 장음이다. 그리고 ‘너 여(汝)’의 의미로 쓰일 때는, 상성으로 역시 장음이다. 그러니까 “여(女)”는 어떻게 쓰이든지 장음이다. 게다가 ‘평성화된 상성’의 목록에도, 또 ‘평성화 된 거성’의 목록에도 “여(女)”는 없다. 그러니까 “여(女)”는 여지없이 장음으로 발음되는 말이다.

자식을 뜻하는 “아들 자(子)”도 상성으로 장음이다. 따라서 여자는 [여ː자]처럼 첫음절 ‘여’를 장음으로 둘째 음절 자는 단음으로 발음해야 한다. 우리말에서 복합어가 아닌 단일어에서는 첫음절만 장음이 실현되고, 둘째, 셋째... 음절에서의 장음은 단음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어사전’이나 ‘한국어발음사전’에서 여자를 단음으로 발음하라고 지시한다. 최한룡은 『서글프도록 슬픈 한국어학의 현실』에서 이를 통탄한다. 손종섭도 마찬가지다. 장음은 단순히 긴소리만이 아니다. 장음은 길며, 동시에 묵직한 소리고 높은 소리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상성은 ‘레’에서 시작해 ‘도’로 떨어졌다가 ‘솔’ 정도로 올라가는 소리다. 단음을 평성이라고 하는데, 이 평성, 즉 단음은 그저 짧은소리만이 아니다. 가볍고 잔잔하며 낮은 소리다.

  시어 “여자(女子)”의 가락을 구현하지 못하면, 어찌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女子)」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을까. 시는 노래랬다. 노래하려면 적어도 계명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오규원 시에서 저 ‘여자’가 무쟈게 많이 나온다. 제목 포함해 열아홉 번이나 나온다. 이참에 한 번씩덜…….

  한 잎의 女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출처
https://url.kr/gbv2y5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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