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단상] ― ‘사전이 놓친 우리말 장단’

    톱.
    톱은, 나무나 쇠붙이 따위를 자르거나 켜는 데 쓰는 연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톱을 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톱의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 국어사전은 물론 『한국어발음사전』에서까지 “톱”의 장단이 잘못 기재됐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톱을 단음으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톱”은, “별(星)/벌(蜂)/돈(錢)/돌(石)/실(絲)” 등등과 같이 15세기부터 장음으로 구분해 왔습니다. 손종섭(2016)은, 오늘날에도 “톱”이 장음으로 발음된다고 합니다. 한자의 ‘톱 거(鋸)’ 역시 거성(去聲)으로 장음입니다.

   음의 길이인 음장(音長)에는 기본적 규칙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장음+단음’은 ‘장+단’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장음+장음’은 ‘장+장’으로 읽히지 않고, ‘장+단’으로 발음됩니다. 장음 뒤의 장음이 놓일 경우, 첫음절의 장음만 장음으로 실현되고, 둘째 장음은 단음화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기본 규칙이 있습니다. 단음은 장음 앞에서 더 짧아지는 ‘극단음(極短音)’이 됩니다. 이 소리가 우리말에서 가장 짧습니다. 이렇게 장음 앞에서 단음이 더욱 더 짧아지는 것을 평고조(平高調)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말은 고정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합니다.

   우리말에는 ‘평성성/측성성’ 조사가 있습니다. 측성성 조사, 그러니까 장음으로 분류되는 조사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은/는/이/가/와/과/도/만/처럼’과 같은 조사가 있습니다. 모두 길게 발음되는 소리입니다. ‘처럼’은 첫음절만 장음입니다.

   “톱”이 15세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장음으로 읽히는 소리라면, 장음으로 발음되는 저 측성성 조사가 단음으로 발음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장음 뒤의 음절은 단음화되기 때문입니다. “톱은”은, 둘 다 장음이므로 ‘장+장’의 음장 구조이나, ‘장+단’의 구조로 바뀝니다. 첫음절의 장음만 장음으로 실현되고 둘째 음절은 단음화되기 때문입니다.

   사전에서처럼 톱이 단음이라면, “톱은”은 ‘단+장’구조가 됩니다. 단음은 장음 앞에서 ‘극단음’이 되므로 음장의 구조는 ‘극단음+장음’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발화하지 않습니다. [토븐ː]처럼 ‘토’를 극단음으로, 아주 짧게, ‘븐’을 장음으로 발음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발음에서는, [토ː븐]처럼 발음됩니다. “톱은” 뿐 아니라, “톱이/톱과/톱도/톱만/톱처럼”은 모두 장음인 ‘톱을 길게’, 역시 장음이지만, ‘단음화된 조사를 짧게’ 발음합니다. 사전편찬자들이 이 과정을 거쳐 장단음을 새롭게 써야 합니다. 말을 할 때는 모르겠지만, 글을 읽을 때는 우리말의 고저장단을 실현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말하듯 낭독한다거나 낭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우리말의 변화무쌍은, 쉽진 않지만 그런 만큼 이를 구현할 때, 그 가락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입니다. 말하듯 낭독/낭송한다는 것은 매력적이고, 노래하듯 낭독/낭송한다는 것은 매혹적입니다.

   한국어 사전은 존중되고, 늘 가까이 두고 보아야 하지만, 오류까지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말의 장단은 무척 보수적입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근대 이후 말은, 분명 빨라졌습니다. 말이 빨라졌다고, 장음이 단음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물론 더러 바뀐 말도 있습니다. 단음이 장음으로, 또는 장음이 단음으로 바뀐 목록이 있습니다. 장단은, 저와 같이 ‘장단(또는 평측)의 대비’로 장단을 넉넉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가락을 더욱 아름답게 할 책무는, '아나운서/성우/배우'입니다. 그런데 장단의 오류가 가장 도드라지는 장르는, 무엇보다도 시낭송이므로 시낭송가가 가장 목마른 이들이 되겠습니다. 에드워드 히르시의 말마따나 "시는 노래와 말 사이를 거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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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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