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詩] ― ‘omnibus 혹은 혼합의 연형(連形)시조’

   오는 8월 5일(토) 오후 4시, ‘경서재 시낭송 잔치’에서 윤금초 시인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를 낭송합니다. 특별히 ‘재춘 제주도민’께서 오셔서 함께 즐기신다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지난봄, 이중섭 화가의 회화와 백석 시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논문을 찾다가 우연하게도 김보람(2020)이 쓴 윤금초 시인 논문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저 시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를 만났습니다. 뜻밖의 선물입니다. 이시는, 이청준 소설 『이어도』가 모티프가 돼 쓰인 시입니다. 제주도 구전 설화 ‘이어도’ 전설이 시의 원형인 것입니다. ‘이어도’는 제주 사람의 이상향이자, 고된 현실을 견뎌내게 하는 도피처이기도 하지요.

   윤금초 시인의 실험 정신에 순도 높은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그는 한 편의 ‘연작(連作)시조’ 속에 다양한 형태의 시조를 혼합하는 ‘옴니버스’ 시조, 다시 말해 ‘혼합적 연형(連形)시조’를 넉넉히 건져 올렸습니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는, 이청준 소설의 인용문 한 연과 7수의 다양한 시조를 버무려놓은 옴니버스 시조로 8연으로 구성됐습니다. 1수/4수/6수는 ‘평시조’, 2수는 ‘양장시조’, 3수는 ‘엇시조’, 5수/7수는 ‘사설시조’로 모두 일곱 수의 연시조입니다. 윤금초에 주목할 점 하나는, 시조의 생명인 종장의 율격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그 정형에 구속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형이라는 틀 안에서의 자유를 향한 그 힘은, 단조롭고 틀에 박힌 정형의 운율을 훌쩍 뛰어넘는 서사 구조를 창출해 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시의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좀 더 적극적인 리듬 의식을 펼칩니다. 그러니까 정형시의 운율과 현대시의 리듬으로서의 프로조디를 버무려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실험 정신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입니다.

   ‘이어도/어어도 사나/이어 이어’와 같은 반복구가 주술처럼 반복됩니다. 또 ‘~속에/~하며/~넘어’ 그리고 ‘~오고 ~가고/~들면 ~때면’의 반복적 혹은 대칭적 병렬구조는, 핵심 시어에 반복되는 소리가 그 의미를 증폭케 하는 리듬을 만들어냈습니다. “섬”이라는 핵심 시어 또한 모두 다섯 번에 걸쳐 반복/변주되며 의미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의미의 확산을 생성합니다. 닿소리의 비음 ‘ㅇ’은, 소리의 반복이 주는 지속성으로 정서적 고양을 이끌며 시의 진폭을 무한 확장하는 역할은 놀랍습니다. 이 시의 리듬에서 김홍도의 「씨름도」를 연상하는 것은, 나의 무리한 상상력이겠지만, 「씨름도」의 좌측 하단의 여백은, 마치 그림의 닫힌 공간을 무한하게 열어 낸 김홍도의 천재적 솜씨와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다음은, 윤금초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전문입니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 윤금초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 섬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청준 소설 ‘이어도’에서

   지느러미 나풀거리는 기력 풋풋한 아침 바당
   고기비늘 황금 알갱이 노역의 등짐 부려놓고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퉁방울눈 돌하루방 눈빛 저리 삼삼하고
   꽃멀미 질퍽한 그곳 가멸진 유채꽃 한나절.

   바람 불면 바람소리 속에 바당 울면 바당 울음 속에
   웅웅웅 신음 같은, 한숨 같은 노랫가락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아련히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 실려 가고.

   다금바리 오분재기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상한 그물 손질하며
   급한 물길 물질하며
   산호초 꽃덤불 넘어,
   캄캄한 침묵 수렁을 넘어.

   자갈밭 그물코 새로 그 옛날 바닷바람 솨솨 지나가네.
   천리 남쪽 바당 밖에 꿈처럼 생시처럼 허옇게 솟은 피안의 섬 제주 어부 노래로 노래로 굴려온 세월 전설의 섬 가본 사람 아무도 없이 눈에 밟히는 수수께끼 섬, 고된 이승 접고 나면 저승 복락 누리는 섬, 한번 보면 이내 가서 오지 않는 영영 다시 오지 않는 섬이어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밀물 들면 수면 아래 뉘엿이 가라앉고
   썰물 때면 건듯 솟아 푸른 허우대 드러내는
   방어빛 파도 헤치며 두둥실 뜨는 섬이어라.

   마른 낙엽 몰고 가는 마파람 쌀쌀한 그해 겨울
   모슬포 바위 벼랑 울타리 없는 서역 천축 머나 먼 길 아기작 걸음 비비닥질 수라의 바당 헤쳐 갈 때 물 이랑 뒤척이며 꿈결에 떠오른 이어도 이어도, 수평선 훌쩍 건너 우화등선 넘어가 버리고
   섬 억새 굽은 산등성이 하얗게 물들였네.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8hRho9VErPn2mFiKWU9vCAf8jq4GRdmFu3Mdhsb3FeYazgsD92Sk2PPcCwnJBZiJl&id=100054589251893&sfnsn=mo&mibextid=RUbZ1f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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