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林檎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출처: 시집 [신석정의 작은 시집](석정문학회, 2016.09), 10쪽~12쪽

Posted by 시요정_니케
,
사진을 누르시면 해당되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출처: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시인의 마을 - 정지용 시인이 살았던 집터
 나무신문
 승인 2017.11.03 16:30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을 등단시킴


Posted by 시요정_니케
,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침은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가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하눌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사랑하고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시인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병화 시인  (0) 2020.12.13
[퍼온글]정지용 / 향수  (0) 2020.11.29
윤동주와 정병욱  (0) 2020.11.28
[퍼온글]미당은 대한민국의 시인인가?  (0) 2020.11.27
[퍼온글]이기철 시인 이야기  (0) 2020.11.26
Posted by 시요정_니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