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한용운, 베를린의 중심에 서다", 지식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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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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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 이근모

시베리아 북풍한설 내 핏줄을 얼게 해도
해오름달이나 매듭달이나 언제나 멈춤 없이
흘러, 흘러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핏줄은 얼지 않았는데 마음이 얼었습니다
천 년의 바람과 천 년의 구름이 자리한 하늘 아래
혈의 정체성을 찾아 대를 이은 혼불이 광야를 누볐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천
나의 세포 되어 마음 구석구석 자리 틀고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혈맥으로
백두까지 한라까지 뻗을 수 있기를 염원하였습니다

하얀 순백의 옥양목에 떨어뜨린 쪽물처럼
그 혈흔, 시베리아 벌판에 점을 찍고
한민족 영혼으로 승화해 왔습니다

~
나의 조국!
늘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 부릅니까?
왜 나는 당신의 혈맥 바깥처럼 존재해야 합니까?
내 핏줄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누구의 모어입니까?

출처: 이근모 제7시집 "바람이 되어", 모던포엠


[단어]
핏줄: 1.의학 혈액이 흐르는 관(管). 동맥, 정맥, 모세 혈관으로 나눈다.
         2. 같은 핏줄의 계통.
고려인 高麗人: 주로 옛 소련 지역에 사는 우리 겨레.
해오름달: '일월'을 달리 이르는 말.
매듭달: ‘십이월’을 달리 이르는 말.
혈맥 血脈 1. 명사 같은 핏줄의 계통.
본향 本鄕
1.명사 본디의 고향.
2.명사 시조(始祖)가 난 곳.

[장음]
얼: 게  언:제나 없:이 얼:지 정:체성 광:야 세:포 영:원히 없는 염:원 한민족 말: 모:어

고려인 관련 참고자료 블로그
https://blog.naver.com/gakbum/221479204871  

출처:  이근모 시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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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다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출처"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시인생각"

[장음]
계:절, 없:이, 속:에, 별:, 다:, 둘:, 말:, 멀:리,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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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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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장음 공부]
단, 없이, 거짓말, 언젠가, 준비, 곤욕, 성, 뒤, 원망, 돈, 비난, 의식, 병원, 소원, 일, 대신, 아무렇게나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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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그륵 /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시는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 있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장음]
말:  모:든 사:람 담:는 삶:  쉽:게 개:정판 서:정시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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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맹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엔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조용히 웃으시던
그 얼굴의 빛 무늬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 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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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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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石門) /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시집 [풀잎 단장], 1952)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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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밭 / 신달자

늙은 밭에도 잡풀은 자란다
절반은 자갈이 들어박혀 수명 다해 가는 거친 밭에도
돌 사이를 비집고 잡풀이 자란다

이렇게 천둥이 치고 치는 밤
늙은 여자의 밭에도 이름도 없는 바다의 해일이 쳐들어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잡풀이 온몸을 덮어
회초리로 쳐도 죽지 않는 잡풀이 살 속을 흔들어
다만 누워 고요라도 암벽 타듯 끌어안아라 한다

어쩌다가는 눈에 익은 배롱나무 한 그루
무슨 인연으로 천둥 낙뢰를 혼자 맞으며
방에서 새어 나간 마음 한 줄기
밤새 누가 울었는지 모르게 소나기 없었던 마당이 젖어 있다

다만 누워 어둠을 꼬아 사슬처럼 온몸에 두르니
누군가 이리 떼처럼 운다 바스러지듯 운다
얼마나 단단한 심장인가 하늘이 내려와 땅을 덮고 땅이 솟구쳐 하늘을 껴안는

늙은 밭에는 홀로 울음을 달래는
산 그림자가 산다.

※ 원문은 시집에서 꼭 확인하세요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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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천 /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뼈섬: 뼈가 쌓여 이루어진 땅, 한국 땅
지까다비: 일본인들이 신는 검고 질긴 천으로 된 노동자용 버선 같은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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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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