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춤 /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려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하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 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涅槃)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 ≪문장≫ (1939.4) 수록
바라춤 / 신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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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바라춤 / 신석초
혜강(惠江)
2020. 2. 19. 09:25댓글수0공감수1

<사진 : 스님이 바라춤을 추는 장면>
바라춤
- 신 석 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려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하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 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涅槃)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 ≪문장≫ (1939.4) 수록
<시어 풀이>
살어여러 : 살아가려
경경히 : 무척 환하게
이슷하여이다 : 비슷하여이다.
무상한 열반 : ‘열반’은 탈의 경지를 이르는 말로, ‘무상한 열반’은 더할 수 없이 높은 모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해탈의 경지
사바 : 불교에서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
꿈어리는 : 꿈틀거리는
형역(形役) : 육체적 욕망에 의한 정신의 예속. 육체의 지배를 받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종교적, 명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제목의 ‘바라춤’이 그렇고 ‘바라춤’이라는 제재를 통해 세속적인 번뇌, 인연, 욕망과 그것을 끊고자 하는 종교적인 승화 사이의 갈등과 소망을 ‘바라춤’에 빗대어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의 표제가 되는 ‘바라춤’은 승무(僧舞)의 일종으로, 불교에서 부처에게 재(齋)를 올릴 때 천수다라니경을 외며 바라를 치면서 추는 춤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도를 닦는 장소를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추는 춤이다. 양손에 바라(哱囉, 놋쇠로 만든 타악기)를 쥐고 배꼽을 중심으로 하여 머리 위로 들어 올리거나 좌우로 돌리고, 빠른 동작으로 전진, 후퇴, 회전하며 추는 춤인데 천수바라, 명바라, 사다라니바라, 관욕게바라, 막바라, 내림게바라가 있다. ‘바라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원래 402행으로 구성된 장시(長詩)이다.
조지훈의 <승무>와 제재 및 갈등 구조가 유사하지만, <승무>와는 달리 이 작품에는 춤 동작에 대한 묘사가 없다. 그 대신 내적인 갈등이 <승무>보다 훨씬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이 갈등은 절대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가 겪는 정신과 육체, 감각과 관념, 상승과 하강 간의 충돌에서 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의 배경에는 불교 사상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최고선에 도달하고자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깔려 있다. 이런 사상은 우리의 전통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에서 중심된 이미지는 ‘꽃’과 ‘물’이다. 여기서 ‘꽃’은 인간 존재의 육체적, 감각적 측면을 드러내는 상징으로서 인간의 시간성, 유한성, 정형성을 내포한다. ‘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의 대다수에게 비슷한 의미를 지닌 원형적 상징으로 나타나며, 기능적으로 정화와 생명의 보존을 수행하여 순수성과 신생의 의미를 내포한다.
내용을 따라가 보자. 1연은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표현한다. 화자가 추구하는 세상인 ‘티없는 꽃잎’과 이와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는 ‘구슬픈 샘물’을 대비시켜 갈등의 양상을 드러낸다. ‘티 없는 꽃잎’은 맑고 아름다운 삶의 이미지로 화자의 순수한 삶 지향으로 열반의 세계로서 그 길을 따라 살려 하는데 구슬픈 샘물, 즉 세속적인 번뇌기 가로막는다. 그래서 화자는 ‘어이할까나’라며 속세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2연에서는 갈등하는 화자인 내면세계가 ‘잠 못 이루는 두견’에 이입되어 제시된다. 3연에 와사 다시 세속과 열반 지향의 갈등이 나타난다. ‘무상한 열반’을 꿈꾸지만, ‘어지러운 티끌’(세속적인 번뇌)이 내 맘의 맑은 거울(맑고 깨끗한 구도자의 마음)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4연에서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은 세속의 인연을 끊을 수 없어 슬퍼한다. 보석(열반을 지향하는 깨끗한 마음)이 몸속에 비밀스럽게 숨은 나를 괴롭히는 세력(뱀)으로 갈등하고 있다. 이제 화자는 마지막 5연에서는 넓은 바다인 창해(열반의 세계)를 향해 잔잔히 훌러가는 ‘시냇물소리’에 ‘지는 꽃잎’을 띄워 보내고 싶어 한다. 유장한 물의 흐름에서 종교적 구원을 갈망한다. 번뇌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열반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화자에게 창해로 흘러 들어가는 꽃잎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구도자에게는 여전히 열반의 세계에 다다르기 위해 거치는 수행(修行)의 번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어찌하랴. 모든 종교가 세속적 번뇌와 종교적 구도(求道) 사이의 갈등을 수반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 구도의 갈등은 ‘바라춤’을 매개물로 형상화되었다.(남상학)
작자 신석초(申石艸, 1915~1975)
본명은 응식(應植), 호는 석초(石艸). 충남 서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한산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한학을 배우다가 1925년 서울로 올라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학년 때 병으로 휴학하고 석왕사에 들어가서 요양하는 동안 문학과 철학 서적들을 탐독하다가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든다.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호세이대학 철학과에 들어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카프((KAPF, 조선프롤레티라아예술가동맹) 맹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자신이 부르주아의 아들임을 깨닫고 몹시 괴로워하던 그는 차츰 사회주의의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환멸을 느낀다. 이 무렵 우연히 접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인 폴 발레리에 심취하면서 그는 사회주의 사상과 단호하게 결별한다. 그는 발레리의 작품이 어릴 적에 습득한 동양의 노장사상과 흡사한 점을 발견하고는 발레리와 노장사상을 오가며 습작에 몰입한다.
그는 잦은 병치례를 하면서도 이육사와 더불어 《신조선》의 편집 실무를 맡는다. 그는 《신조선》 6월호(1935)에 시 <비취 단장>으로 문단에 데뷔, 《자오선》 창간호(1937)에 <호접(胡蝶)> <무녀의 춤> 조선일보에 발레리를 다룬 논문 <테스트 씨>(1938>, 《시학》 <파초> <가야금> <배암> <묘(墓)> 등을 발표한다. 이 무렵부터 그의 시들은 발레리의 우아함과 노장의 허무 사상이 묘하게 조화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문화부장, 1954년 한국일보 기자로 들어가 1957년 논설위원 겸 문화부장을 지냈다. 서라벌예대 출강, 196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65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5~66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시집으로 《석초시집》(1946), 《바라춤》(1959), 《폭풍의 노래》(1970), 그 외에 《수유동 운(水踰洞韻)》(1974)과 《처용은 말한다》(1974) 등이 있다. 동양의 허무사상을 바탕으로 한 절제된 언어가 돋보이는 한편, 전통적 리듬을 빌려 옛것, 사라져가는 것, 찰나의 것을 즐겨 읊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https://m.blog.daum.net/nam-sh0302/1571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