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있습니다 / 정완영

저무는 먼 숲 속에 싸락눈이 내리듯이
영혼의 허기진 골에 일모는 쌓이는데
보채는 저녁놀 같은 내 외롬이 있습니다.

피 묻은 발자국을 두고 가는 낙엽들의
무덤으로 가는 길은 등불만한 사랑으로
오늘도 밝혀야 하는 내 설움이 있습니다.

한 오리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물결 속에
차고도 단단한 물먹은 차돌처럼
말없이 지니고 사는 내 마음이 있습니다.


시낭송

https://youtu.be/2Er5TH4BD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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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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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우포 여자 / 권갑하


설렘도 미련도 없이 질펀하게 드러누운
그렇게 오지랖 넓은 여자는 본 적이 없다
비취빛 그리움마저 개구리밥에 묻어버린

본 적이 없다 그토록 숲이 우거진 여자
일억 오천만 년 단 하루도 마르지 않은
마음도 어쩌지 못할 원시의 촉촉함이여

생살 찢고 솟아오르는 가시연 붉은 꽃대
나이마저 잊어버린 침잠의 세월이래도
말조개 뽀글거리고 장구애비 헐떡인다

누가 알리 저 늪 속 같은 여자의 마음
물옥잠 생이가래 물풀 마름 드렁허리
제 안을 정화시켜온 눈물 보기나 했으리

칠십만 평 우포 여자는 오늘도 순산이다
쇠물닭 홰 친 자리 물병아리 쏟아지고
안개빛 자궁 속으로 삿대 젓는 목선 한 척



----------------------------------------------------------------



권갑하 시인의 「우포 여자」는 우리나라 최대 내륙 습지인 경남 창녕군에 있는 우포늪을 소재로 한 시조입니다. 5수로 된 우리의 전통 시조 가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작품이죠.



「우포 여자」는 우포늪의 원시성과 여성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포늪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넓은 늪지대가 품고 있는 원시성은 현대인들의 흔들리고 산만한 삶을 갈무리하기에 충분합니다. ‘일억 오천만 년 단 하루도 마르지 않은/마음도 어쩌지 못할 원시의 촉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살 찢고 솟아오르는 가시연 붉은 꽃대/나이마저 잊어버린 침잠의 세월이래도/말조개 뽀글거리고 장구애비 헐떡이’는 늪지대는 장엄한 침묵 속에서 대지의 호흡을 느끼게 합니다.



우포늪을 ‘우포 여자’로 의인화하여 나타냄으로써 여성성과 생산성을 통해 대지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설렘도 미련도 없이 질펀하게 드러누운/그렇게 오지랖 넓은 여자는 본 적이 없다/비취빛 그리움마저 개구리밥에 묻어버린’ 곳. 또한 ‘숲이 우거진 여자’, ‘원시의 촉촉함’, ‘말조개 뽀글거리고’ 등의 구절을 통해 여성적 관능미를 불러일으키고, ‘가시연 붉은 꽃대’, ‘장구애비 헐떡인다’ 등을 통해서는 여성성 위에 눈을 뜨는 남성의 성행위까지 연상하게 하는 감각적 재미를 더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안개빛 자궁 속으로 삿대 젓는 목선 한 척’-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은 수컷과 암컷의 교접으로 이 우주의 생명성이 영속되고 있음을 넌지시 이야기해주는 듯도 합니다.



「우포 여자」는 우포늪의 원시성과 여성적 이미지를, 그 속에 태어나고 자라는 동식물 등을 통해 구체화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했지만, 추하지 아니하고 성스럽게 탈바꿈시킨 작품으로 읽힙니다. 시인의 상상력과 구체적 감각이 잘 결합된 한 편의 그윽한 그림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ksinews.co.kr/mobile/view.asp?intNum=3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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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의 하루 / 이보영 


오래된 슬픔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머나먼 지평선이 내 숙명의 텃밭이 듯
정강이 멍이 들도록
걷고 또 걸어온 길

나도 이제 훌훌 털고 예쁜 꽃이 되고 싶다
어느 날 흠뻑 젖어 형체 없는 사랑일망정
새하얀 꽃으로 피어
네 가슴에 닿고 싶다

 

 

<해설> 바닷물이 여러 날 햇볕에 말려지면 소금꽃이 피어난다. 그 바닷물은 머나먼 대양을 건너서 왔을 것이다. 수 만리 망망대해 수평선을 건너오면서 부서지고 찢기우고 상처 입었을 것이다. 더러는 절망의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그래서 소금꽃은 유난히 희고 눈부신 것인가.
< 약력> 해남 출생(본명 이현숙).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위원, 제5회 중앙일보학생시조백일장 우수지도교사상 수상, 국제PEN광주 문학상, 전남예술상 외 다수, 인생나눔멘토(문화체육관광부) 시집 ‘물소리가 길을 낼 때’, ‘나직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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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과 바람 / 정완영

시조 2021. 12. 22. 16:56

연과 바람 / 정완영

옛날 우리 마을에서는 동구洞口 밖에 연蓮밭 두고
너울너울 푸른 연잎을 바람결에 실어두고
마치 그 눈 푸른 자손들 노니는 듯 지켜봤었다.

연밭에 연잎이 실리면 연이 들어왔다 하고
연밭에 연이 삭으면 연이 떠나갔다 하며
세월도 인심의 영측도 연밭으로 점쳤었다.

더러는 채반만 하고 더러는 맷방석만한
직지사 直指寺 인경소리가 바람타고 날아와서
연밭에 연잎이 되어 앉는 것도 나는 봤느니.

훗날 석굴암 대불이 가부좌하고 앉아
먼 수평 넘는 돛배나 이 저승의 삼생三生이나
동해 저 푸른 연잎을 접는 것도 나는 봤느니.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며
바람에 인경 소리를 실어봄 즉 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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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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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지 봉선화가/허난설헌

금분에 저녁 이슬 각씨 방에 서리니.      金盆夕露凝紅房
미인의 열 손가락 예쁘고도 매끈해.       佳人十指纖纖長
애절구에 짓찧어 장다리잎으로 말아      竹碾搗出捲菘葉
귀고리 울리며 등잔 앞에서 동여맸네      燈前勤護雙鳴璫
새벽에 일어나 발을 걷다가 보아하니      粧樓曉起簾初捲
반가와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누나      喜看火星抛鐘面
풀잎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 날아온 듯     拾草疑飛紅蛺蝶
가야금 탈 때는 복사꽃잎 떨어진 듯       彈箏驚落桃花片
토닥토닥 분바르고 큰머리 만지자니      徐勻粉頰整羅髮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인 듯 고와라      湘竹臨江淚血斑
이따금 붓을 쥐고 초생달 그리다 보면     時把彩毫描却月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가 싶네      只疑紅雨過春山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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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작(獨酌) / 박시교

시조 2020. 11. 8. 22:01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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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 박시교

시조 2020. 11. 8. 21:56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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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고(考) / 박시교

시조 2020. 11. 8. 21:48

 

온종일 모은 폐지 한 리어카 이천오백원

몇십억 아파트 깔고 사는
호사와는 견줄 수 없다지만

경건한 그 삶의 무게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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