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이 놓친 장음] ― ‘술 주(酒)’
'소통의 더없는 매개물'이기도 하고, 때론 '악마의 피'이기도 한 술. 그 '불의 물'이라는 ‘술 주(酒)’의 장음에 대해 살펴본다.
『한한대자전』(2351쪽)에 따르면 ‘술 주(酒)’는, 가장 긴소리인 상성(上聲)이다. 손종섭(2016)은, ‘술 주(酒)’가 거성화 되었다고 한다. 우리말에서 ‘술 주(酒)’는, 이제 상성이긴 상성이되, ‘거성화된 상성’이 된 것이다. 상성이 가장 긴소리고 거성은 상성 다음으로 긴소리다. 상성과 거성은 모두 장음으로 표기된다. ‘술 주(酒)’는 결국 다소 짧아졌다 뿐이지, 여전히 장음으로 길게 발음되어야 하는 말이다.
그런데 ‘발음 사전’을 포함한 ‘한국어 사전’에는, ‘술 주(酒)’를 모두 단음으로 발음하라고 지시한다. 이는 수정되어야 할 오류다. 따라서 ‘술 주(酒)’는, 다음과 같이 모두 장음으로 발음해야 한다. “주ː객[酒客]/주ː량[酒量]/주ː막[酒幕]/주ː모[酒母]/주ː사[酒邪]/주ː색[酒色]/주ː점[酒店]/주ː정[酒精]”. 그런데 사전은 왜 그런지 “주정(酒酊)”만은 [주ː정]이라고 장음으로 정확하게 적어놓았다. 다행한 일이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ː막[酒幕]’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다”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 2연).
“친구네 퀴퀴한 ‘주ː막집[酒幕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신경림,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2연 6~7행).
“‘주ː모[酒母]’의 사투리 안주 삼아/ 막걸리 잔 위에서도 고향은 철철 넘친다” (문병란, 「나의 영산강」, 2연 4~5행).
“‘주ː사[酒邪]’ 한 그릇” (정진용, 「주사(酒邪) 한 그릇」, 제목).
“사랑한다는 것은/ 학각시가 자기 깃털을 뽑아 길쌈을 하기이고/ 그 남편이 그 베를 팔아 모은 살림을 ‘주ː색[酒色]’잡기로 탕진하기입니다.” (한승원, 「사랑한다는 것은―열애일기·27」, 제목).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ː점[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2연 1행).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ː정[酒酊]’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백석, 「여우난곬족」, 2연 4행).
“지금도 밤늦게 ‘술-주ː정[술酒酊]’ 소리가 끊이지 않는” (신경림,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단연 9행).
“소주의 주원료인 ‘주ː정[酒精]’ 가격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상된다.” (경남신문 기사).
출처
https://url.kr/ipts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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