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38565
홍성식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동유럽 호숫가 마을에서 떠올린 박철의 시 한 편

www.ohmynews.c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50060#home  
이재무

[ 시가 있는 아침 ]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중앙일보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1959~ )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

www.joongang.co.kr

ㆍ주변부의 존재들
https://m.cafe.daum.net/poemory/H5qF/3591?svc=cafeapp
장석주

푸른 시의 방

강인한의 시가 있는 카페. 백석, 정지용부터 오늘의 시인까지 좋은시들. 시에 관한 에세이. 카페회원의 시 등. 강인한 :1944년 정읍 출생. 1967년 '대운동회의 만세소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m.cafe.daum.net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112

[EBS 시네포엠] 영상으로 풀어낸 시의 드라마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눈물은 왜 짠가’, ‘

[한국강사신문 정헌희 기자] EBS(사장 김유열)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시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 EBS 을 유튜브 EBSCulture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은 영상 콘텐츠 중

www.lecturernews.com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는 2001년 발표된 박철 시인의 시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나이가 들도록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시인이, 현실의 소시민적 일상과 시인으로서의 내적 자아와의 충돌을 자전거를 타며 영진설비에 돈을 가져다주는 과정을 통해 그려냈다. 김홍표, 김난희, 남궁린 배우가 연기하고, 낭독은 정형석 성우가 맡았다.

[아트앤스터디]

http://sjbnews.com/news/print.php?code=li_news&number=742915

새전북신문

[온누리]봄비 향기 막힌 하수도를 뚫은 노임을 들고 나선다. 그곳은 영진설비인데 자전거를 타고 휭하니 가서 전해주고 오면 된다. ‘나’는 두 번이나 길을 나섰는데 실패한다. 한번은 굵은 비

sjbnews.com

ㆍ영진의 사전적 의미를 가져와 시를 확장하여 해석함

<단상>
ㆍ작품 2001년
ㆍ노임: 4만원
ㆍ2001년의 4만원은 2023년 기준으로 약 9만 5천원의 가치를 가집니다. 이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ㆍ2023년 기준으로 국산 맥주의 가격은 500ml 한 캔에 약 2,000원 - 3,000원 정도이며, 수입 맥주는 약 4,000원 - 6,000원 정도입니다.
ㆍ일부라도 갚을 수 있었다.
ㆍ매우 소심하고, 융통성이 부족하지만
자스민 향기를 뿜는 순수한 남자
ㆍ씩씩한 부인 덕에 남편의 순수를 닮은 고운 눈썹의 딸을 얻었다.

온몸으로_읽는_이_시대의_명시_10.pdf
0.16MB

https://www.artnstudy.com/n_lecture/note/%EC%98%A8%EB%AA%B8%EC%9C%BC%EB%A1%9C_%EC%9D%BD%EB%8A%94_%EC%9D%B4_%EC%8B%9C%EB%8C%80%EC%9D%98_%EB%AA%85%EC%8B%9C_10.pdf


https://jamesbae50.tistory.com/m/13411747

김포행 막차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김포행 막차 - 박철 그대를 골목 끝 어둠 속으로 보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흔들거리며

jamesbae50.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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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염원했던 1923년 출생 작가들
대산문화재단, 11일부터 탄생 100주년 문학인 문학제’
박용구, 방기환, 정한모, 한성기, 한운사, 홍구범 6인 선정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02500129

‘새로운 세상’ 염원했던 1923년 출생 작가들

대산문화재단, 11일부터 탄생 100주년 문학인 문학제’ 박용구, 방기환, 정한모, 한성기, 한운사, 홍구범 6인 선정, 1959년 ‘문예’ 창간호에 실린 홍구범 단편 ‘농민’은 일제 치하 가난한 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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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을 위한 낭독.

https://youtu.be/bBdiwa_HviQ?si=mjrTYZ6ZU24XIb_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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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狂氣에 감사하라

우이동시인들 25

( 이생진, 채희문, 홍해리, 임보)

출판 : 우이동사람들. 1999
우이동 시인들 1집~24집 목차
우이동 시인들 25집 이생진 시

우이시 동인 25시집 <너의 광기에 감사하라> 中

우이동 소리

狂(미칠광)

광 (狂)자 앞에 기역(ㄱ)을 더해서 '꽝'하고 싶다.
가끔 시에서 시가 붕괴되는 굉음(轟音)을 듣고 싶다

이생진

1
나는 시를 쓰는데 광적이다. 하룻밤에 30편, 사흘에 시집 한 권치를 쓸 때가 있다. 물론 그 한 권 양이 단번에 시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90편이 180편 될 때까지 기다렸다 시집 한 권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일 년 걸릴 수도 있고 이 년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재촉하지는 않는다. 언제고 또 소나기가 올 테니까. 그때 180편을 다시 90편 정도로 줄인다. 이 작업은 소나기를 맞을 때보다 고통스럽다.

2
'전업 시인이라 하던데 월수입이 얼마냐?' 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에 월수 5만원이었는데 금년엔 3월이 지나도록 한 푼 못 올렸으니, 작년보다 낮겠다고 했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본다. 시인의 수입을 묻는 사람이 잘못이다. 올 예상으로는 월수 3만원이 안 될 것 같다. 시 한 편에 5만원 치고, 일 년에 일곱 번만 청탁이 와도 연 35만원, 예산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월 100만원은 돼야 시인도 먹고사는데 하며 웃는다.
이때 따르르하고 전화가 걸려왔다.
'이 선생님이십니까? 원고를 청탁하고 싶은데요. 산문인데요. 매당 만원 30장입니다.'
'시밖에 안씁니다. 산문을 쓰면 시가 고장나니까' 하고 거절했다. 쓰기 싫은 것을 억지로 쓰고 싶지가 않다. 그후로는 시도 산문도 청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나에게 편했다.

3
'선생님 시집은 팔린다는데'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니다. 딱 한 번 있었다.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파란 표지의 <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성산포를 찾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때 '그거 내가 쓴 것인데'하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그만뒀다. 모르는 이가 내 시집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독자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가 인상적이었다느니,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生과 死가 손을 놓지 않아/서로 떨어질 수 없다

성산포에 와서/ 자살 한 번 못하고 돌아가는 비열/구기구기 두었다가/ 휴지로 쓸 것인가

이런 데서는 공감했다느니 하는 전화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이 구절이다. '자살 한 번 못하고 돌아가는 비열 구기구기 두었다가 휴지로 쓸 것인가'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월수 (月收)
생각을 가로막기 일수다. 제발 그 짓은 말았으면.

4
어느 해던가 12월 31일 저녁, 성산포 청년회관에서 낭송을 하고 났는데 중년 신사 한 분이 다가오며 " 이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어려서 성산포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밖에 나가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며 명함을 건네줬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저는 일출봉에 올라가 자살을 생각하다가 이 구절에서 입술을 깨물고 물 건너갔죠.' 하고 내미는 명함. 외국 상사 대표. 그는 해마다 내게 연하장을 보내줬다.
그런가 하면 끔찍한 일도 있었다. 대량의 수면제를 들고 절벽 갓으로 돌아다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킨 실연 당한(?)여자. 그녀는 그 시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마을 교회에서 한달 동안 기도를 드리고 돌아갔다. 내가 그 섬에 갔을 때 그 소녀(?)가 놓고 간 기다란 사연과 두꺼운 성경책을 봤다.
90년대 중반에 나는 5년에 걸쳐 해마다 1월 1일 아침 일출을 맞으며 일출봉 정상에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했는데 한번은 시를 낭송하러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가쁜 숨소리를 누르며 내게로 다가오는 젊은 부부와 어린이가 있었다. 그중 여자가
'선생님, 이 남자는 저의 남편인데요'하며, 30대 남자를 소개하고는 '저희는 선생님 시 때문에 성산포에서 만나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이 애는 저희 아들이고요. 오늘은 저희 가족 셋이 선생님께 세배 드리러 이곳에 온 거예요. 선생님 반가워요.'하며 정중하게 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여서도에서의 일인데 70 노인이 날 보고 뭣하는 사람이냐고 호기심 섞인 의심조로 신분을 묻기에 내 시집을 건네주며 '시 쓰는 사람' 이라고 했더니 그는 내 시집 제목을 보는 즉시
' 나 같으면 결코 <그리운 바다…> 소리가 안 나와요. 내 입장에서는 <지겨운 바다…>라고 해야, 나는 바다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친 걸요'하며 쓴웃음을 쳤다. 왠지 그 사람에게 내 시집이 미안했다. 그런가하면 이런 전화는 경종처럼 울리기도 했다.
'저는 그 시집을 들고 성산포에 갔다가 실망했어요. 그 시집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이런 경우 나는 어떻게 그의 전화를 받아야 할지 몰랐다. 어떤 사람은 감동하고 어떤 사람은 실망하고 내가 시를 쓸 때는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책이 되어 갈 곳으로 가고 나니 내 편이 아니라 그쪽 편인 것을 실감했다. 월수 5만원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시라고 써'라든가 '먹고 할 일도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 맥이 빠졌다.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은 시인을 보석상으로 아나보다. 그러니 동회에서 시인의 생계를 걱정할 리 없다. 시인의 가난은 시인만이 안다.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 주고
참아 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 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워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 바다에 오는 이유> (1972)에서 <가난한 시인> 전문

5
이왕에 그 시집은 날라리가 되었지만 실망보다는 반가움으로 치부해 둔다. 나는 가끔 성산포가 속해 있는 남제주군 군수가 준 금시계를 자랑했다. 이 시계가 노랗기 때문에 금시계라고 착각할 정도다. 때로는 금시계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군민(郡民)수천 명을 모아 놓고 '이 분은 시인인데 우리 군(성산포)에 공로가 많았기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시계와 명예군민증을 수여합니다' 이 때 시를 쓰고 처음 박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이야기하는 독자들 앞에서는 늘 부끄러워했다. 미완성 같은 그런 부족감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시보다 제주도의 상록수와 노란 감귤을 보면, 구시월에 억새꽃과 갯쑥부쟁이꽃을 보면, 4월의 찔레꽃과 5월에서 늦가을로 이어지는 인동초꽃을 보면, 협제와 함덕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 다랑쉬오름의 달덩이를 보면, 비자림의 조상목(祖上木)을 보면, 물질하는 할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면, 나는 환상 속에서 눈물을 짜기 일쑤다.
나는 서울에서 시심(詩心)이 고갈되었을 때 배낭을 메고 슬그머니 제주도로 내려간다. 그곳에 가서 시를 훔치는 것이다. 나는 달밤에 돌담을 넘듯 남의 집 담을 넘어 시를 훔치는 도둑놈이다. 이것을 제주도 시인들 앞에서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처벌하지 않았다. 처벌할 법규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섬사람들이 공인하는 시를 훔치는 도둑놈이다. 시는 훔치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아무도 없는 달밤에 몰래 집 밖으로 나오기를 좋아한다.
'우리 시 훔치러 섬으로 가자'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제주도 일주 도보기행이라는 '광(狂)'을 내세우고. 한 달을 잡았다. 하루에 너댓 시간씩 걸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이틀 걷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날씨 탓이었다. 날씨가 사흘 맑기가 어려웠고 비바람이 사흘 계속하기도 어려웠다. 비오는 날은 나가지 않고 걸어가면서 쓴 글을 정리했다. 성산포에서 남쪽으로 남원 서귀포 모슬포 한림 제주 조천 구좌 그리고 성산포 이렇게 18일 동안 걸어서야 완전 일주가 됐다. 1999년 3월 11일에 성산포를 출발해서 4월 5일 다시 성산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만 70의 생일을 맞았다. 생일날엔 하루 종일 오름만 올라갔다. 열흘은 더 걸어다닐 것 같았다.
나는 시가 나비처럼 날아오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나비처럼 시를 맞으려 날아가곤 한다. 시는 어디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쓰고자 하는 시는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도 나비처럼 도망치려 한다. 도망치는 나비를 따라가듯 도망치는 시를 잡아야 한다. 영감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언제고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잘 포착해야 했다. 운동 경기에서만 민첩한 동작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더 예민하고 더 섬세한 촉각으로 찾는 자세 그것은 훈련에서 얻어진다. 운동선수들의 뒤에는 피나는 훈련과 꾸준한 도전이 있듯이, 시인에게도 땀흘리는 경험과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누워서 광맥을 찾는 것과 신발이 닳도록 광맥을 찾아다니며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시도 광맥을 찾듯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수시로 떠도는 것이다. 여행은 혼자 했을 때 열 편의 시를 쓸 수 있어도, 열 사람이 떼지어 했을 때에는 열 사람 다 한 편의 시를 건지기 어렵다. 시인은 시를 쓸 때도 휴식할 때도 혼자 있는 것이 유리하다. 철저하게 개성 있는 시를 쓰려면 철저한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6
나의 경우 움직여야 시가 생겼다. 시론을 펴면 시가 숨고, 시론을 덮으면 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시론을 쓰는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해한다. 어느 평론가가 '잘된 시는 아니다'라고 했을 때 나도 그 평론을 읽고 '잘된 평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니다''기다'라고 확인 받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기 때문에 시를 쓴다. 월수 때문에 시를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시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이다.

7
외로운 섬에 와서 얻어지는 것은 '단순함'이다. 복잡한 지하철을 구별해서 탈 필요가 없고 횡단보도와 신호등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가족사랑 이웃사랑 하는 것을 TV를 통해서 배울 필요가 없고 동백꽃 진달래꽃을 꽃집에 가서 살 필요가 없다. 나서면 꽃밭이요 문을 열면 이웃 정이요 가고 싶은 데로 가면 길이다. 생선가게에 가서 생선을 엎었다 잦혔다 할 필요도 없다. 낚싯대를 담가두면 고기가 문다. '단순화'한 다음에 남는 것이 시다. 그러니 나는 섬에 와서 신선한 시를 낚는 꼴이 된다. 단순해야 시가 잘된다. 의복도 思考도 밥그릇도 단순해야 시가 모여든다.

8
나는 차를 탄 사람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을 존경한다. 예수도 걸어다녔고 원효(元曉)도 걸어다녔고 김삿갓도 걸어다녔다. 이렇게 말하면, '그때야 차(車)가 없으니까 걸었지'할 거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도 걸어 다니는 이가 있다. 원공(圓空) 스님은 20년 동안 한 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다. 이번에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줄기를 걸어가겠다고 절을 나섰다.
<바람의 딸> 한비야도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자유전망대까지 걸어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시인들이 한 달만 집을 나서도 시가 달라질텐데 하면서 나는 걷는다. 시를 쓰는 정도(正道) 는 길을 올바르게 걷는데 있다. 걸으면 건강해진다. 시인은 누구보다 건강해야 한다.건강해야 시도 건강해진다. 혼자 떠나라. 혼자라야 혼자만의 시를 쓸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디로 떠나자. 각자의 방향이 서로 다른 데로 떠나자. 다리가 아프면 상상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쉬자. 어느 공간이고 시인을 싫어하는 공간은 없다. 시인을 싫어하는 공간은 썩은 공간이지만 시인은 그 썩은 공간을 되살릴 수 있다. 우리 어디로 떠나자. '몰래 떠나자.'이것은 건강할 때 들려오는 유혹의 소리다. 그 소리가 들리는 동안 시인은 행복하다. 시인의 생명은 이 유혹의 소리가 들리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9
시인이거든 ' 시가 옷을 주냐 밥을 주냐' 따지지 말라. 그저 '꽝(狂)' 하고 미쳐버려라. 내 시는 이런 광기에서 얻었지, 월수로 얻은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동회에 가 손을 벌리기보다 울어가며 시를 쓰겠다. 가난한 고집도 힘이 된다. 혀를 깨물자, 혀를 깨물었을 때 말은 막혀도 시는 나오니까.



너의 狂氣에 감사하라

그날밤 나는 침실에 없었다
억새밭을 헤치고 바닷가로 나갔고
그것도 부족해서 절벽에 목숨 건 등대처럼 서 있었다
그때 나도 절벽에 목숨을 걸었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지역에서 얻은 시 스무 편
태어난 시에게 타일렀다
이처럼 미쳐서 쓰는 것을 용서하라고
이처럼 미쳐서 쓰는 것을 감사하라고
이처럼 미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라고
이 광기에 체벌을 가하지 않는 세상에 감사하라고
그리고 이혼소송을 걸지 않는 아내에게 감사하라고
세 시 이후는 시계도 탄복했다
시간이 시계를 비워두고 도망쳐 버리는 자유도 인정하라
그것은 모두 언어의 과장이다
그 과장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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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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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필독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를 살게 하는 말들 / 천양희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는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그중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건
  사람을 쬐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
  날마다 나를 살게 하는 말의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간다


    -『지독히 다행한』(창비, 2021)

https://youtu.be/Zchv2ge_Urk?si=Zsm-etpPa7ufDPH5


https://youtu.be/hpEMtS0izpw?si=ZH3lM0t6eQSV-hqz

ㆍ사회자 이정록 시인은 토크쇼를 준비하며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과 논문을 다 읽었다.
ㆍ시인의 책에 씌어 있는 모든 자서ㆍ 서문, 시인의 말, 후기만 모아서 읽었더니 시에 대한 접근태도, 시에 대한 외경 등 종교적 자세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함
ㆍ<작가수업> 천양희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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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언어의 예술이며
따라서 언어를 미적으로 변용시키는
기울의 연마 없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여기에 가치 있는 철학이 융합돼야 한다.
                                                               -시인 오세영-

https://youtu.be/Vp-GtJF1YkE?si=YrX1q4EeWJABPP1W


바닷가에서 /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에서

오세영(1942년~ )시인은 전남 영광에서 출생. 1965년《현대문학》에 〈새벽〉이 추천되고,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한국시인협회상, 소월시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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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topia21.com/program/bbs/board.php?bo_table=aracontents&wr_id=128&sst=wr_good&sod=asc&sop=and&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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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김종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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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조명희 문학관, 포석 죽음에 대한 진실 문서 3부 등 일반에 공개 - 동양일보

[동양일보 김진식 기자]포석선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담긴 문서 3점과 선생의 초상화가 일반에 공개된다. 26일 조명희 문학관에 따르면 지난 5월 열린 포석조명희문학제에 러시아에

www.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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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30403080514755

김종해 시인 “팔순 지나니 풀이, 바람이 보이더라”

“정월 대보름날 사흘 지난 1962년 2월18일께, 나는 고향 부산을 떠났다. 고향 바다와 초장동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를 부산 본역에 남겨두고 슬프고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서울행 밤기차가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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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요정_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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